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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데이터 이용료 무료’ 제로 레이팅 탄력받는다···정부, 사후 규제 방식 택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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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특정 서비스 이용자들이 데이터 이용료를 내지 않는 제로레이팅(Zero-rating)을 허용하되 사후 규제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로레이팅과 관련해 명시적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일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제로레이팅을 허용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 내 불공정행위 발생 가능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사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망 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송 과장은 인터넷 망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자 간의 협력으로 이용자 편익이 증가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제로 레이팅을 사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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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레이팅은 인터넷 이용자에 대해 특정 콘텐츠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의 대가를 부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 망을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자사 서비스의 이용을 확대하거나 가입자 확대를 위해 제로 레이팅을 제공하거나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이 자사 콘텐츠 이용 확대를 위해 이용자의 데이터 요금을 대신 망 사업자에게 납부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국내에서 SK텔레콤이 지난 3월 자사 고객들에게 한해 ‘포켓몬고’ 게임을 실행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를 한시적으로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 제로 레이팅의 한 예이다. SK텔레콤이 계열사인 SK플래닛의 온라인 쇼핑몰 ‘11번가’ 이용 시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하고 KT가 지니팩 가입 시 월 9600원인 음악 스트리밍 전용 데이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도 제로 레이팅에 속한다.

제로 레이팅은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비용을 내도록 해 망 사업자의 망 운영·관리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최근 통신사들이 통신비 인하 부담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제로 레이팅 허용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콘텐츠 사업자들의 경우 자사 콘텐츠를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 비용을 대신 내줘 서비스 초기에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데이터 비용 걱정 없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제로 레이팅이 전체적으로 사회적 편익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 측 시각이다.

반면 데이터 비용을 대신 부담하기 어려운 중소 콘텐츠 사업자들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콘텐츠 사업자들이 제로 레이팅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광고를 확대하거나 서비스 요금을 인상해 ‘조삼모사’ 식으로 이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로 레이팅이 중소 사업자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박 교수는 “제로 레이팅으로 망 사업자가 부가 사업자(중소 콘텐츠 사업자)를 약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제로 레이팅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공정 경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SK텔레콤과 KT가 계열사 서비스에 제로 레이팅을 할 경우 부당지원행위 등으로 공정거래법에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제로 레이팅은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의 망 사용료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콘텐츠 시장의 다양성을 해쳐 장기적 소비자 이익에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와 망 중립성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오픈넷의 박지환 변호사는 도로공사(망 사업자)가 자동차(콘텐츠)를 만드는 상황을 가정해 제로 레이팅을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도로공사가 자동차를 만들어 자사의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들에게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거나 현대차가 협력사라고 가정할 경우 현대차를 구매한 사람들에게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는 것과 같다”며 “이통사가 갖는 시장 지배력으로 경쟁에서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통신비 인하의 효과도 없다고 봤다. 박 변호사는 “통신사들이 통신비 인하의 새로운 수단으로 제로 레이팅을 제시하고 있지만 제로 레이팅은 특정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만 데이터 과금이 없을 뿐 보편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는 없다”며 “제로 레이팅으로 특정 상업적 표현에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면 정치적·사회적 표현은 위축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통신사들이 요금할인율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망 중립성 완화를 요구하는 분위기인데 정부가 통신비 인하와 망 중립성 문제를 별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과정방통위 수석전문위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안정상 수석은 “망중립성을 확대하고 보장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고 민주당의 당론이다”며 “제로레이팅은 통신비 인하 효과보다는 네트워크 사업자나 대형 콘텐츠 사업자간의 담합에 의한 고정 고객 유치가 더 큰 목적이라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소위 자본력이 탄탄한 콘텐츠 사업자가 네트워크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특정 서비스에 대해서만 제로레이팅을 적용할 경우, 나머지 중소 콘텐츠 사업자들은 경쟁력을 잃게 돼 망 중립성 원칙을 훼손하게 될 뿐이다”며 “자본력은 취약하지만 유망한 중소 벤처, 1인기업, 스타트업의 우수한 콘텐츠는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사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제로 레이팅을 허용·불허하는 규정 자체가 없었다. 다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난달 10일 의결한 고시에서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거나 해킹이나 디도스 공격 등 통신 서비스의 안정성, 보안성 확보 등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통신 사업자의 차별적 조치도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통신업계는 이를 이용자 이익 침해가 없다면 제로 레이팅도 허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김종영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고시로 규제의 근거는 마련했지만 제로 레이팅 등으로 이용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업자의 부당행위는 원칙적으로 법으로 정비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로 중소 콘텐츠 사업자 차별이나 제로 레이팅 서비스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간 차별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과금체계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에 일관되고 구체적인 허용기준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고 불공정 경쟁 혹은 사용자 이익 침해가 있을 경우 사후 규제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유럽연합과 영국의 경우 제로 레이팅 관련 상시 모니터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은 사안별로 사후 판단을 하는 등 주요국에서 사후 규제 방식을 택하는 추세도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송 과장은 “우리나라에서 제로 레이팅이 문제점이 불거질 정도로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이고 제로 레이팅으로 이용자 편익이 증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주요국도 사전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고 발전 추세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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