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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당에 헌금’ 막았더니 ‘실세에 뇌물’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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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현영희 비례대표 공천 비리 의혹


▶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비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방검찰청이 지난 22일 현영희 의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 의원의 구속 여부는 8월30일 국회 본회의 투표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한 범죄일까, 구조적인 비리일까? 비례대표 공천 비리의 이면을 파헤쳐 본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15대 국회(1996~2000년)까지는 전국구(全國區) 의원이라고 했다. 일부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돈전자를 써서 ‘전(錢)국구’라고도 불렀다. 돈으로 의원직을 샀다는 의미다. ‘공천헌금’, ‘특별당비’라는 말을 선거 때마다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0년 2월 선거법 개정으로 전국구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둘러싼 돈 잡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 공천 비리가 터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도대체 왜 비례대표 공천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왜 옛날엔 야당에서 전국구를 팔았을까

전국구 공천헌금과 관련해 1995년 10월5일은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창당 한 달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전국구 공천헌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과거에는 전국구 후보에게 특별헌금을 받아 총선을 치르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 운영경비와 선거자금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발언은 당시 정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 정도로 야당의 전국구 헌금은 일상화되어 있었다. 김대중 총재는 약속을 지켰을까? 다음해인 1996년 15대 4·11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13명의 전국구 당선자를 냈다. 교육자 출신의 정희경,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출신의 박상규씨가 기호 1번과 2번이었다. 상위순번 후보들은 “총재님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돈을 좀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술렁댔다. 그러나 결국 공천헌금을 내지 않았다. 그 이전의 공천헌금 실태는 어떠했을까?

전국구 의원을 직접 해 본 사람들, 당시 당내 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들에게 물어보았다. 1992년 14대 3·24 총선에서 민주당은 전국구 후보 순번을 정하면서 ‘당선 안정권’은 30억원, ‘당선 가능권’은 15억~20억원씩의 공천헌금을 받았다. 물론 당 지도부와 영입 후보들은 예외였다. 16번 이하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 결과 민자당이 참패하면서 민주당은 전국구 후보 22번까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16번부터 22번까지는 ‘공짜’로 배지를 달았다.

앞서 1988년 13대 4·26 총선에서 야당의 전국구 당선자는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16명,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13명,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 8명이었다. 당별로, 사람별로 액수의 차이가 있지만 당선권에 든 후보들은 10억~30억원씩의 공천헌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직 대통령이 재벌들 움직여
여당에 돈줄 대주던 시절
가난한 야당선 ‘전(錢)국구 장사’
당선권 후보들에 10억~30억씩
2008년에야 돈 공천 불법화

새누리당, 현영희 사건 번지자
“단순한 개인 범죄” 불끄기
일부선 “영남 공천서도
박근혜 눈치보느라 수사 안해”


이처럼 주로 야당에서 돈을 받고 전국구 자리를 팔았던 것은 당시 정치자금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민정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총재였던 전두환, 노태우 현직 대통령이 직접 재벌로부터 수천억원대의 정치자금을 받아서 당에 내려보냈다. 전국구 순번은 청와대에서 정했다. 여당은 전국구 장사를 할 필요가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야당엔 돈이 없었다. 기업인이 야당에 돈을 줬다가는 국세청의 세무사찰을 받던 시절이었다. 야당으로서는 선거에 쓸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구 의원 자리를 재력가들에게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당가의 반공개적인 전국구 공천헌금 관행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공천헌금을 받은 뒤 공천이 제대로 안 되면 돈을 반드시 돌려주었다. 그래야 분쟁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공천 신청자가 공천을 알선해 준 사람에게 많게는 10억원에서 적게는 2억~3억원까지 ‘소개료’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몇십억원씩의 돈을 내고 전국구 의원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두 부류였다. 첫째, 돈을 내고 국회의원이 된 뒤 그 이상의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다. 철저한 장삿속이다. 둘째, 이왕 번 돈으로 단순히 명예를 사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돈을 주고 국회의원 자리를 샀다고 공공연히 떠들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줄은 알았던 것이다.

서청원·양정례·김노식·문국현의 의원직 상실

8대 의원을 지냈던 ㅅ씨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40억원을 내고 민주당 전국구 상위순번을 받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당에는 18억원만 입금됐다. 중간에서 누군가 배달사고를 낸 것이다. 몇 년 뒤 ㅅ씨는 당에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은 ㅅ씨에게 상임위원장 자리를 주고 무마했다.

마찬가지로 14대에 공천헌금 30억원과 소개료 10억원을 주고 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된 ㄱ씨가 있었다. ㄱ씨는 국회의원이 되면 40억원 정도는 쉽게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었다. 돈 회수는 고사하고 사업이 아예 망하는 바람에 지금은 기원에서 바둑만 두는 신세로 전락했다.

1995년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전격적으로 전국구 공천헌금 포기 선언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었다. 야당의 자금사정이 급속히 호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규모는 정치자금법이 92년 11월, 94년 3월 두 차례 개정되면서 크게 늘기 시작했다. 92년 이전에 국고보조금은 유권자 1인당 600원씩의 ‘경상보조금’(매 4분기 분할 지급)과 300원씩의 ‘선거보조금’(전국선거가 있는 해에 추가 지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돈을 각 정당에 분배하는 것이 국고보조금이다. 두 차례의 법개정으로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계상 단가가 각각 800원씩으로 인상됐다. 전국선거가 있는 해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국고보조금이 늘어난 것이다.

당시 국민회의 자금 사정을 아는 인사는 “매달 5억~6억원이 필요했는데 1억원은 당비수입, 3억~4억원은 국고보조금, 나머지 1억~2억원은 김대중 총재가 알아서 마련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국고보조금 계상 단가는 2008년 2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엔 910원까지 인상됐다.

그렇지만 야당의 전국구 돈 공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국고보조금을 거의 받을 수 없어 자금난에 시달리던 신생 정당이 늘 문제를 일으켰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민주국민당(민국당)은 강숙자씨를 전국구 1번에 배정하고 공천헌금 30억원을 받았다. 민국당은 이 돈을 지역구 출마자 기탁금과 중앙당 비용으로 전액 사용했다.

2008년 2월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수수를 금지하는 ‘47조의 2’ 조항을 신설했다. 공천 대가 금품수수가 마침내 불법화한 것이다. 법원은 이 조항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다.

2008년 18대 4·9 총선에서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는 비례대표 1번 양정례, 3번 김노식 후보에게 모두 32억1천만원을 당에 내도록 했다. 검찰은 이들을 선거법 47조의 2 위반으로 기소했다. 당사자들은 재판에서 대여금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공천대가 금품수수로 판단했다. 세 사람은 2009년 5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나란히 의원직을 상실했다. 친박연대에서 노철래 의원은 애초 4번을 받기로 했다가 8번으로 밀렸다. 당선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는데 ‘박풍’ 덕분에 기적적으로 당선이 됐다. 8번은 당선권 밖이라 돈을 내지 않았고 그래서 기소되지도 않았다. 노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광주에 출마해 당선됐다. 새옹지마다.

그런가 하면 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는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대가로 6억원의 당채를 저리로 발행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 혐의로 2009년 10월 의원직을 잃었다.

이재영 의원이 비례 24번을 받은 경로

법원의 서슬에 놀란 탓일까? 2012년 19대 총선에서 야당의 비례대표 공천 비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엉뚱하게 집권여당에서 사건이 터졌다.

새누리당의 현영희 의원 사건은 과거 전국구 및 비례대표 공천 비리와 양상이 좀 다르다. 무엇보다 돈을 받은 주체가 정당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20일 후보선출 전당대회에서 기자들이 ‘공천헌금 파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질문하자, “당에서 받은 것이 아니므로 헌금이 아니라 개인간의 금품수수 비리 의혹”이라고 사건의 성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에 공천헌금을 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혹시 비리가 있었다면 비례대표 순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들이 개별적으로 금품을 받은 경우라고 봐야 한다.

총선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례대표 당선권을 대략 22번까지로 보고 매우 세심하게 관리를 했다. 대통령을 노리는 박근혜 후보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돈을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총선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권영세 전 의원이 돈을 받을 사람도 아니다. 22번 밖의 순번은 23번 현영희, 24번 이재영, 25번 신경림이었다. 24번 이재영 의원은 13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도영심씨의 아들이다. 이재영 의원이 당선권 가까이에 포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영심씨의 현 남편인 권정달 전 의원의 간곡한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조직적인 금품수수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내엔 다른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정권실세였던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몇몇 실세들이 돈을 받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에 개입했지만 정권 초기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금은 그 주체가 친박인사들로 바뀌었을 뿐 박근혜 후보의 눈치를 보는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또다른 인사는 “집권여당 비례대표 공천은 대개 청와대에서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현영희 의원 사건 같은 것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비례대표 공천뿐 아니라 영남 지역구 공천에 친박실세 몇 사람이 깊숙이 개입했고 돈도 챙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이 사실이라면 현영희 의원 사건은 대대적인 공천 비리 사건의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당이 조직적으로 공천헌금을 챙기든, 공천위원이나 당 실세들이 뇌물성 돈을 챙기든, 국민들이 보기에는 다 비슷한 공천 비리다. 정당의 공천 비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차원에서 찾는 것이 빠를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권이 있으면 돈이 몰린다. 부당한 이권이 사라지면 이를 대가로 오가는 금품도 자연히 사라진다. 정치의 영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이 재벌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거둬들이고, 야당은 전국구 공천 장사를 하던 1990년대까지, 공무원 세계에는 상급자에게 승진청탁 뇌물을 주던 관행이 남아 있었다. 민간영역의 부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청업체 임직원은 하청업체의 금품과 향응 제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청렴도는 올라가고 있다.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 장사는 거의 사라졌다.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저지르는 공천 비리 정도가 잔재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그 잔재도 사라져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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