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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외국계 항공사에 배상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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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싼 가격으로 경쟁하는 일부 외국계 항공사들이 항공사 잘못으로 인한 결항, 연착, 수화물 분실 등이 발생해도 책임을 승객 탓으로 돌리거나, 배상에 상당한 시간을 끄는 등 소비자들을 애 먹여 이로 인한 민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항공 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건수를 보면 2010년 140건이던 것이 2011년 254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8월까지 집계된 것만 256건으로 벌써 지난해 전체 건수를 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외국계 항공사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국내 항공법에는 항공사가 이런 경우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배상할지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도록 했고,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른 소비자 분쟁기준에도 국제선의 경우 2시간~4시간 이내 지연되면 운임의 10%를 배상하고, 4시간 초과해 지연되고 대체 항공편을 제공하면 200달러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운항시간이 4시간 이상인 노선의 경우 4시간 이내 대체 항공편을 제공하면 200달러, 4시간을 초과해 대체 항공편을 제공하면 400달러를 배상하도록 정해놓고 있습니다. 만약 대체 항공편을 제공하지 못했을 경우 운임을 환급하고 400달러를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외국계 항공사들로부터 이 기준에 따라 배상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지난 8월 20일 중국 청도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사건도 그랬습니다. 당시 저녁 7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던 한국인 70명을 포함한 승객들은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관제탑 사정으로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30분마다 같은 내용의 방송만 나올 뿐 어떤 문제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는 항공사 직원은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밤 10시 30분에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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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은 집단 항의했지만 방법이 없었고, 결국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다음날 비행기가 마련되는 대로 한국으로 나눠서 돌아와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사람, 중요한 회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 학교에 가야 하는 사람 등 개인적인 피해가 컸지만 한국에 돌아와 다시 집단 항의를 한 끝에 받은 배상금은 1인당 50달러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집단적으로 한 목소리를 냈을 경우는 사정이 낫습니다. 지난 5월 이 모씨 일행 3명이 모스크바 공항에서 당한 일은 더 황당합니다. 이 씨 등은 출국 수속을 끝내고 출발 15분 전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러시아어로 갑자기 탑승구가 바뀌었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러시아어로만 방송돼 이 씨 일행은 물론 일본인 등 다른 아시아인들은 그냥 기다려야 했고 바뀌었다는 탑승구도 전력 질주로 뛰어가도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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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들이 항의를 하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17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더니 해당 항공사 직원이 대체 항공편을 타려면 1인당 600유로를 더 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거듭 항의하자 300유로로 깎아주겠다고 흥정을 했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이에 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받아본 탑승권에는 추가 요금을 냈다는 사실은 아예 적혀있지 않았고, 항공사 직원이 이씨 수화물을 열어본 뒤 제대로 넣어놓지 않아 수화물 일부가 도착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귀국 후 해당 항공사 한국 지사에 항의를 했지만 한국 지사는 이런 문제를 처리할 권한이 없다며 본사로 책임을 넘겼고 두 달 반이 걸려 해당 항공사 본사로부터 받은 공문에는 배상할 근거가 없지만, 나중에 러시아 올 때 비행기를 타면 좌석승급을 해 주겠다는 내용뿐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소비자 피해 보상 규정이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외국계 항공사들이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는 배상을 못하겠다고 버티기 때문입니다. 국내 항공사들의 경우 이미지도 있고 정부 기관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눈치라도 보지만 외국계 항공사들은 클레임 처리는 본사에서 한다고 하며 명백한 물증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배상에 소극적입니다. 경황이 없어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던 승객들은 낭패를 보기 마련입니다. 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접수해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까지 내려져도 버티는 경우가 많고 여기까지 가는 시간도 최소 6개월이 넘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앞서 설명한 항공법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고시에는 천재지변, 안전운항을 위한 예견치 못한 정비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항공사가 입증할 경우 책임을 면할 수 있는데 일부 항공사들은 제대로 근거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불가항력적인 이유” 라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은 피해가 늘고 있어 조만간 외국계 항공사 이용에 관한 소비자 경보 발령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관한 공정위 고시가 권고규정에서 강행규정으로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문제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당하려면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현지에서 반드시 사고사실확인서를 요구해 확보하고, 가급적 한국에 지사가 있고 클레임을 처리할 권한이 위임된 항공사인지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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