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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최고' 프로그래머, 생활고에 '한탕'유혹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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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보드 변조 프로그램 개발자, 월급 6개월 밀려 생활고로 시름(상보)]

신모씨(42)는 컴퓨터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그래머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했다. 전문대학에서 2년간 전기공학을 전공한 신씨는 업계에서도 소문난 실력자였다.

그는 능력이 있었지만 생계가 고달팠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신씨는 주유기 설비업체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6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난 뒤 이곳저곳에서 일감을 받으며 프리랜서로 생활고를 견뎠다.

떠났던 회사에서 생각지 못한 악연이 이어졌다. 신씨의 옛 직장상사 채모씨(44·구속)는 "주유기를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며 여러 차례 신씨를 설득했다. 처음 완강히 거절하던 신씨는 차츰 '한 몫' 챙기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는 여러 회사에서 일감을 받을 만큼 능력이 있었지만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엔 돈이 늘 부족했다.

신씨는 독한 마음을 먹고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한국석유관리원 등에서 단속을 나오면 20ℓ를 기준으로 정량을 측정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프로그램은 주유량이 20ℓ를 넘기면 정량보다 4~8% 정도 적게 주유되도록 설계됐다. 또 주유기 전원을 차단했다가 다시 켜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프로그램을 조작했다.

신씨가 만든 변조 프로그램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판매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씨로부터 프로그램 한 개당 35만원을 주고 산 채씨는 두 배로 불려 다른 사람에게 팔고 차익을 챙겼다. 채씨로부터 이 프로그램을 사들여 주유소 업체 100여곳에 판 김모씨(37·지명수배) 등은 개당 200만원에서 300만원을 받았다.

일부 주유소들은 변조 프로그램을 이용해 배를 불렸다. 서울 강북을 비롯해 경기도 수원 및 부천 등 주유소 8곳에서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챙긴 금액만 2억6000만원. 경찰은 "이렇게 정교하게 주유기를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의 실력이 아까워 형을 치르면 주유소 단속활동에 나갈 수 있도록 관련기관에 취업시키고 싶다"며 "적발된 주유소보다 훨씬 더 많은 곳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4일 정상보다 4~8% 적게 주유되는 변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유통시킨 혐의(계량에 관한 법률위반 등)로 프로그램 개발자 신모씨(42) 등 3명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또 메인보드에 변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주유량을 조작한 B주유소 대표 장모씨(37)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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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희기자 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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