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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서울대 동창끼리 술한잔 하더니 8천억을 흔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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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게임 1위 넥슨, 엔씨소프트 인수
김정주 - 김택진 "함께하자" 5년전 약속 실현


MK News

국내 게임업계 1위인 넥슨이 2위권인 엔씨소프트 지분을 인수해 단일 주주로는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 14.70%(321만주)를 취득했다고 8일 밝혔다. 매입가는 주당 25만원이며 총투자금액은 8045억원이다.

넥슨이 이번에 매입한 지분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소유한 것이다. 이로써 김 사장의 엔씨소프트 지분은 24.69%(540만주)에서 9.99%로 낮아졌다. 3대 주주는 9.69%(211만주, 올해 3월 말 기준)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넥슨은 최대주주로는 올랐지만 경영권은 엔씨소프트가 행사한다고 밝혔다. 명목상 최대주주일 뿐 지분율이 14.7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표이사직도 김택진 사장이 유지하게 된다. 엔씨소프트 이사회에 넥슨 인사가 포함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이번 파트너십으로 엔씨소프트가 가진 개발력과 넥슨의 글로벌 퍼블리싱 플랫폼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강력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넥슨은 단숨에 엔씨소프트의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그동안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와 카트라이더 등 캐주얼게임 분야에서는 최고 입지를 다졌지만 드래곤네스트 등 자체적으로 내놓은 MMORPG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반대로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엔씨소프트의 경우 넥슨의 해외 서비스 인프라를 이용해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두 업체의 결합은 앞으로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적 제휴지만 지분 매입이라는 특수한 방법을 통해 사실상 하나의 울타리에 편입됐기 때문에 '넥슨+엔씨소프트' 조합은 국내 게임업계에서 독점적 위상을 확보하게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매출 규모는 각각 1조2190억원, 6089억원이다. 합치면 1조8279억원이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9조원임을 감안하면 '넥슨+엔씨소프트'는 시장의 20.3%를 차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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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서울대와 카이스트 선후배 관계로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던 김정주 NXC(넥슨지주사)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허름한 술집에서 잔을 부딪치며 언젠가는 같이 일해보자며 손가락을 걸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12년. 10여 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두 기업은 다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 넥슨은 한국 최대 게임기업으로 캐주얼게임 업계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고 엔씨소프트는 MMORPG 부문에서 어느 기업도 따라올 수 없는 게임사로 성장했다.

잊고 있었던 두 사람 간의 약속은 2012년 6월 8일 현실이 됐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지분을 통한 전략적 제휴를 맺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극비로 이뤄졌다. 양사도 지분 매입 여부를 외부에서 물어와서야 알았다. 거래 지분이 14.7%로 결정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15% 이상의 지분을 획득해야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신고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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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최대 규모 거래가 성사되면서 넥슨은 명실상부한 게임업계 '공룡'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게임 전 영역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확보하면서 성장 기회를 맞게 됐다.

게임업계의 반응은 "충격"이라는 말뿐이었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 매입은 게임업계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결합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당황스럽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합쳐지면 그 힘은 어마어마하다. 현재도 넥슨이 게임업계에서 독주하고 있는데 이제는 따라갈 수 있는 기업이 없다"고 말했다.

두 기업의 수익모델이 상반된다는 점은 양사에 시너지효과를 줄 전망이다. 넥슨의 경우 게임 자체는 무료고 아이템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부분유료화' 모델을 주로 갖고 있고, 엔씨소프트는 MMORPG 기반 월정액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넥슨의 부분유료화 노하우가 엔씨소프트 게임에 접목되면 게임 저변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엔씨소프트의 독립경영은 한동안 유지될 전망이다. 인수ㆍ합병으로 기업을 키운 넥슨은 섣불리 점령군 노릇을 한 적이 없었다. 게임업계의 문화가 기업마다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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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의 카트라이더 캐릭터(왼쪽)과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캐릭터.


넥슨은 지난 2월 온라인 게임 '프리스타일'로 잘 알려진 JCE의 지분 6.01%를 추가 확보하면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는 등 위젯, 네오플, 엔도어즈, 게임하이 등도 잇달아 인수한 바 있다. 인력이 핵심인 게임업계의 특성상, 인수ㆍ합병 후 기업 통합(PMI)이 어느 업종 못지않게 중요하다. JCE도 지금까지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기술력 중심의 게임사로서 엔지니어 중심으로 기업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인력 유출 발생 시 넥슨이 기대한 전략적 제휴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 별개의 회사로 엔씨소프트를 내버려 둘 가능성은 낮다. 넥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큰돈(8045억원)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이 안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넥슨의 경영권 인수는 단계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넥슨은 "브랜드 통합은 아직 생각해볼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향후 가능성은 있다"고 여지는 열어놓았다.

넥슨이 많은 것을 얻는 반면 2대 주주가 된 김택진 사장이 주식을 왜 팔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경영 일선에 나서기 어렵게 됐다는 설과 부동산 등 다른 영역에 투자 계획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대원 기자 / 황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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