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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유기농민 몰아내고 400억원짜리 ‘텅 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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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기존 유기농민 몰아내고 세운 유기농 테마파크 관람객 뜸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유기농 박물관을 우연히 찾아갔다. 조용한 마을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3층 규모의 건물에는 전시실, 카페테리아, 옥상텃밭, 기획전시실 등이 현대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남양주시가 세계유기농대회 준비를 위해 마련한 ‘남양주 유기농 테마파크’의 주요 건물 중 하나다. 테마파크 건설에 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일반인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유기농 테마파크 주변에 있는 자전거 도로가 단서가 된다. 조안면 일대는 원래 유기농업을 했던 지역이지만, 4대강 사업 여파로 대다수 유기농민이 대체지인 덕소로 밀려났다. 원래 유기농지 자리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자전거 도로나 산책로가 대신 들어서 있다. 테마파 크가 주변 농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유기농 테마파크에는 유기농 박물관, 체험농장 등 12개의 주요 시설이 들어서 있다. 왼쪽부터 파머스마켓, 하늘정원, 전시장/ 유기농테마파크 홈페이지
주변 유기농 농민 참여 거의 없어

테마파크 건설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남양주시는 테마파크 건설 초기에 시민사회단체와 손을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때 몸담았던 시민사회단체인 ‘희망제작소’가 참여해 유기농산물의 가공과 유통까지 포함하는 프로젝트로 진행이 됐다. 2009년 6월 이석우 남양주시장과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유기농 테마파크 조성과 관련한 MOU를 체결하면서 색다른 방식의 테마파크가 만들어지는 분위기였다. 테마파크는 유기농 박물관 및 센터, 수직농장, 로컬푸드센터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제작소는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됐다. 당시 희망제작소 국장이었던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은 “처음에는 우리가 남양주시장을 찾아가 제안했다.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가 있고 직거래도 할 수 있는 농업공화국을 제안했다”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무원 사회에서 민간위탁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프로젝트 구상과 현재의 테마파크는 많은 변화를 한 셈이다. 테마파크에는 유기농 박물관, 유기농 체험농장, 파머스마켓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 유기농민의 참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유기농 농산물을 팔 사람도, 살 사람도 없다. 무늬만 유기농 테마파크가 된 셈이다.

주변에서 유기농을 했던 농민들은 테마파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적대적이다. “테마파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운영을 하고 있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조안면에서 유기농을 했던 이모씨의 땅은 현재 자전거 도로가 되어 있다. 유기농을 그만둘 수 없어서 대체지로 마련된 덕소까지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이씨는 “조안면에서 덕소까지 15㎞ 정도 된다. 덕소에서 조안면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불편하다”면서 “아버지 때부터 30년 동안 이곳에서 유기농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문수 지사가 이곳에 와서 대한민국 유기농을 도와준다고 했는데, 우리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유기농 농민을 내쫓고 유기농 테마파크를 지은 게 말이 되나. 그곳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조안면 농민 정모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자신의 유기농지가 자전거 도로가 된 이후에는 자전거만 봐도 화가 날 정도다. 정씨는 “유기농을 했던 땅은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되어 있다. 그곳에 사람이 별로 오지도 않는데, 왜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를 쫓아내고 400억원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나중에 관리도 힘들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결정을 내려서 처리하고 유기농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9월 28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열린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 개막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재정자립도 낮은 지자체 무리한 예산

농민들의 이야기처럼 평일에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울창한 숲이 자전거 도로 옆에 있어서 햇볕이 들지 않아 오히려 음침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구간도 눈에 띌 정도였다.

유기농 테마파크 건설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총 건립비 394억원 중 국비는 16억600만원, 도비는 8억3200만원이다. 나머지 360억원은 모두 남양주시가 투입했다. 재정자립도가 42.7%(2011년)에 불과한 지자체가 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것은 부담되는 일이다.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유기농 테마파크 예산을 이번에 살펴보니 시비 비율이 예상보다 높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설명했다.

2012년 남양주시 본예산은 8291억원이다. 이중 일반회계가 6354억원이고, 특별회계(상수도 관련 경비로 수도, 하수도, 수질개선 사업 관련 예산이 특별회계로 잡혀 있다) 예산은 1937억원이다. 일반회계 중 8%(508억원) 정도가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필요한 경상경비다. 이를 제외하면 5800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한 해 살림을 하는 것이다. 남양주시 기획예산과 관계자는 “360억원이 한 번에 투입된 게 아니라 연차적으로 나눠서 쓰여졌다. 정부와 도의 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시비가 많이 들어간 것”이라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예산을 짜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기농 테마파크는 남양주시 도시공사가 위탁 관리하고 있다. 남양주시 도시농업팀 관계자는 “남양주시 인력과 예산으로 테마파크를 관리하기 어려워 도시공사에 위탁 관리를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마파크 관리에 들어가는 예산은 한 해 13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남양주 테마파크 방문객은 하루에 200명 정도, 주말에는 300~400명 정도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이나 단체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인적이 드물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관람객의 발걸음이 뜸한 것. 지역 주민들도 이곳을 외면하고 있어서 테마파크 운영이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유기농 박물관의 프로그램도 김치체험, 땅콩심기, 메주콩심기 등 어린이 관람객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다. 도시공사도 당분간은 적자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시공사 관계자는 “박물관이 개관한 지는 8~9개월 정도 됐고, 정상적인 운영 기간은 3~4개월 정도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유기농민을 몰아내고, 주변 지역주민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400억원짜리 유기농 테마파크가 제대로 정착이 될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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