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도 기운 주행장서 시속 220㎞…신차 통과의례는 아찔했다
현대차 울산 ‘51구역’ 테스트드라이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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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페달에 지그시 힘을 주다가 끝까지 밟았다. 계기판의 속도계가 순식간에 220㎞까지 올라간다. 3800cc 신형 엔진이 굉음을 뿜어낸다. 몸은 오른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허리의 좌우를 잡아주는 버킷 형태의 좌석이 아니라면 몸은 오른쪽으로 튕겨나갈 지경이다. 핸들을 잡은 손과 등에 땀이 난다.
60도 급경사로 이뤄진 6차선 차로 끝에 붙어 원심력으로 달리는 차의 모습이 마치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혹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차량은 그대로 전복돼 버린다.
이곳은 허가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현대자동차 내 특수 구역이다. ‘51구역’으로 불리며 에쿠스와 제네시스 신차의 품질을 테스트하는 이곳에서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차를 극한의 상태로 몰면서 문제점을 찾아낸다. 5일 오전 기자는 테스트 드라이버로 참여했다.
까다로운 보안검색 거쳐 51구역 안으로
본지 김윤호 기자 |
공장 앞에 서자 붉은색 등이 깜박였다. 육중한 공장 철문이 위로 열렸다. 5공장 내 51번 생산라인이 끝나는 지점과 연결된 문이다. 문이 열리자 곧바로 반팔에 붉은색 조끼를 입은 8명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막 세상에 태어난 에쿠스와 제네시스 차량을 이리저리 살폈다.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100여 가지 검사 항목이 쓰인 A4지 크기의 검사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5년 경력의 테스트 드라이버 박영태(49) 조장이 다가왔다. “차를 험하게 모는 일반 운전자와 같은 상황을 가정해 차량을 몰아붙이는 게 임무입니다. 일단 여기에 서명하세요.” 박 조장이 건네준 종이에는 ‘재산상 손실 입힐 경우 배상’ ‘안전 수칙 준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51번 생산라인에서 쏟아내는 에쿠스와 제네시스는 하루 240여 대. 모두 16명의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주·야간 8명씩 교대로 모든 차를 몰면서 정교하게 확인한다. 이들은 15년 이상 차량 검사를 해온 전문가들로 한 명이 하루에 15대꼴로 차를 점검한다. 테스트 드라이버 1명이 차 1대를 모는 시간은 약 30분. 하지만 이상이 나타나면 생산라인으로 몰고 와서 철저히 점검한 뒤 운행하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 기자는 박 조장과 한 조를 이뤄 차를 탔다. 기자가 핸들을 잡고 박 조장이 조수석에 앉았다.
막 세상에 태어난 검은색 에쿠스 VL380 차량의 키를 넘겨받았다. 박 조장은 “테스트 드라이버는 오감으로 차량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임무는 시각적 판단이라고 했다. 차량 운전석 뒤편 유리창에 부착된 생산바코드와 검사지에 쓰인 바코드가 동일한지를 확인한 뒤 곧바로 트렁크와 차체의 간격, 문짝의 이음새 불량을 보고 실내 마감 품질(실내등이나 계기판, 시트)의 조립 상태를 눈으로 챙긴다. 차량 상태를 확인하는 기초 점검이다. 차량을 두 바퀴 돌아봤지만 문제점은 찾지 못했다. “이상 없습니다”라고 하자 박 조장은 조수석 뒤 유리와 문짝 부분의 ‘몰딩’ 이상을 찾아냈다. 그러곤 바닥에 바짝 엎드려 배기구를 점검한 뒤 차량 탑승을 허락했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8000만원짜리 고급 차량인 탓일까. 질 좋은 둥근 가죽핸들을 쥐었지만 손에 땀이 나 미끌거렸다.
가속페달을 밟자 길이 5.16m, 2t의 육중한 차량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다. 테스트용 트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져 있다. 일반도로 모습을 갖춘 범용시험로(왕복 800m)와 각종 가혹조건 도로를 재현한 험로(길이 1.8㎞), 고속으로 달리는 원형 고속주회로(한 바퀴 2.5㎞)다.
범용시험로로 진입했다. 눈앞에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나 보던 각종 일반도로를 재현한 모양의 트랙이 나타났다. S자 모양의 급선회로 구간과 시속 120㎞까지 달릴 수 있는 직선형 도로가 있었다. 먼저 급선회로에 진입했다. 차 뒷부분이 미끄러졌다. 급선회 중 브레이크를 잡아버린 게 이유였다. 범용시험로 가운데 급선회로는 평균 시속 80㎞ 내로 달려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규정 속도만 지키면 한번에 돌아나갈 수 있다. 험로는 범용시험로와 맞닿아 있었다. 범용시험로와 같은 상당한 속도로 험로의 요철 구간을 지나갔다. 멀미가 날 정도였다. TV에서 보던 원형 모양의 고속주회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속 200㎞ 이상을 달리면서 엔진 소음과 차량의 마찰음 등을 확인했다.
“킁킁”거리며 코도 동원 … 오감 테스트
고속주회로를 빠져나오자 정차 구역이 있었다. 차를 세웠다. 배기구에 코를 바짝 갖다 댔다. 그리고 엔진룸, 타이어, 브레이크, 실내 곳곳에 코를 갖다 대 킁킁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았다. “타는 냄새도 없고요. 이상도 없습니다.” 박 조장이 다시 한번 체크하더니 만족한 듯 ‘문제 없음’으로 검사지에 체크를 했다. 그러곤 타이어를 쌓아둔 벽 앞에 차를 갖다 대라고 했다. 물론 벽에 가까이 가면 급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차에 내려서 브레이크 냄새를 맡으니 마찰로 발생하는 특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새 차에 기록된 주행거리의 비밀
테스트를 위해 달린 신차의 주행거리가 궁금했다. 박 조장은 “40㎞까지는 테스트용으로 허가가 돼있어요. 보통 고객들이 차를 받을 때 계기판에 20㎞ 이상 기록돼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테스트를 거쳤기 때문이죠”라고 했다. 만약 이상이 발견되면 다시 조립공장으로 차를 보내 모두 수리한다. 그러고 다시 테스트를 하고 차량을 출고한다. 100% 완벽할 순 없지만 결함 없이 차량이 출고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설명했다.
에쿠스·제네시스와 달리 일반 중·소형 차량은 극한의 테스트를 별도로 하지 않는다. 생산라인 끝에 마련된 기계식 롤 테스트기로 출고 점검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차를 몰고 꼼꼼히 테스트를 다시 해 수정한다.
울산=김윤호 기자
51구역은
에쿠스·제네시스 생산라인
그 끝에 3개의 주행로 설치
드라이버 16명이 전담 테스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51구역’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에쿠스와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51번 생산라인과 3개의 주행로가 설치된 테스트 트랙이다. 생산라인에서 나온 차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에게 넘겨져 바로 테스트 트랙으로 나간다. 51구역은 51번 생산라인에서 따온 명칭이다. 에쿠스와 제네시스는 이곳에서만 생산된다.
생산라인에서는 현대차 내에서도 실력파들인 56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생산공정은 다른 승용차보다 까다롭다. 차체 도장은 페인트를 먼저 뿌린 뒤 그 위에 경화제(페인트를 굳히는 화학물질)를 살포하는 공정이다. 색이 더 은은해지고 광택도 살아난다. 모든 공정은 컴퓨터가 제어하는 로봇이 맡는다. 에쿠스와 제네시스에는 충격을 흡수하고 속도를 감지해 차체 높이를 조절하는 ‘충격완화장치’가 장착된다. 이 충격완화장치는 컴퓨터 계측장치를 이용해 장착한다.
16명의 테스트 드라이버는 오랫동안 테스트만 해왔기 때문에 작은 차량 이상도 바로 찾아낸다. 범용시험로, 험로, 원형 고속주회로로 나뉘어 있는 테스트 트랙은 차들이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감안해 만들어졌다. 범용시험로에서는 직선도로를 시속 120㎞로 내달리다 80㎞로 감속해 S자 코스를 빠져나간다. 핸들링과 셔스펜션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험로에서는 아스팔트 포장 200~300m마다 흙길이 나타난다. 시속 60~80km 속도로 달리며 차량 소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원형 고속주회로는 테스트 트랙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경사도 60도의 6차로 구조여서 차는 원심력으로 속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다.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전하는 차 진단법
시동을 걸고 핸들에 진동을 느끼면 엔진 조립 이상
차 문 틈새가 균일하지 않으면 조립 불량
주행할 때 엔진 온도 이상은 오일 부족
브레이크를 잡을 때 핸들 흔들리거나 마찰음 나면 제동장치 이상
주행 시 변속 충격 오거나 변속 지연은 변속기 이상
불규칙한 엔진음이 일정하게 들리면 엔진 내 부속 마찰 현상
김윤호.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송봉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skk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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