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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없는 외국인 위주 관광자원 개발은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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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없는 외국인 위주 관광자원 개발은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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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공무원’ 접고 19개국 배낭여행 다녀온 윤지민씨 쓴소리
관광 담당 공무원이 ‘진짜 관광’을 알기 위해 사표를 내고 세계여행을 다녀와 눈길을 끈다.

260일간 19개국을 돌고 최근 귀국한 윤지민씨(28). 그의 배낭여행은 색다르다. 관광지만 돌아본 게 아니다. 현지 관광청과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30개 기관의 홍보·정책담당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이 어떻게 알려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한국문화원·홍보관도 찾았다. 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윤씨에게 뒷얘기를 들어봤다.

이화여대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LA 남가주대(USC)에서 정책학 석사과정을 밟은 윤씨는 2012년 6월부터 서울시 관광사업과의 한류관광 담당 주무관으로 일했다. 문화·관광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서울관광 마스터플랜 기획, 한류관광 가이드북 제작, 가수 싸이의 서울광장 콘서트 준비 등의 업무가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음을 체감했고, 다른 나라와 도시들은 어떤 관광정책을 펴는지 궁금해 지난해 6월 여행짐을 쌌다.

지난해 6월 호주 시드니를 찾은 윤지민씨는 곳곳에서 다양하고 특색 있는 축제가 펼쳐지는 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 호주 시드니를 찾은 윤지민씨는 곳곳에서 다양하고 특색 있는 축제가 펼쳐지는 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관광, 하면 ‘보기만 하고 오는 여행’이란 부정적 인식이 짙어요. 외국인 방문객 수에만 초점을 맞춰 시설물 건축과 특색 없는 축제 개최 등 보여주기식 행정에 집중한 탓이 큽니다. ‘좋은 관광’의 해답을 구하려고 여행을 떠났죠.”

윤씨는 e메일과 전화로 약속을 잡으면서 현지 관광청과 접촉했다. 관계자와 만날 때까지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큰 힘이 됐다. 서울시 근무 당시 ‘SNS 우수활용 공무원’으로 서울시장 표창을 받을 만큼 SNS에 친숙했던 그는 여행의 모든 과정을 SNS와 블로그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생중계했다. 260일간의 기록은 2000여명의 팔로어들에게 전달됐고, 낯선 타국에서 SNS 친구를 통해 머물 곳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는 “여행 기록을 담은 영문 블로그는 현지 인터뷰를 진행할 때 개인 미디어로 인정받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됐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관광안내원과 기념품 판매원, 호스텔 주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귀국해 명함을 세어보니 150장이 넘었다”고 말했다. ‘세계관광의 날’ 행사와 콘퍼런스에서 각국 문화·관광부 장관 등과도 교류할 기회를 잡은 그는 관광 마인드가 나라·도시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요르단 관광부 장관 출신인 탈렙 리파이 유엔세계관광기구 사무총장의 말이 떠오른다. 리파이 총장은 “관광은 사람이 중심이다. 지역(민)이 관광을 즐기지 못한다면 관광객들 역시 절대 즐길 수 없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윤씨는 “정부 주도의 인프라 조성이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문화와 관광을 소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실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국인을 배제한, 외국인만을 타깃으로 한 스토리 없는 관광자원 개발은 낭비”라고 거듭 꼬집었다.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관광’을 말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다시 배낭을 꾸리고 있다. 이번엔 전국일주다. 영어로 된 가이드북을 들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또 외국인들이 원하는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겁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