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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석궁 사건의 진실’ 쟁점① 재임용 탈락… 괘씸죄냐 자질 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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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학·법원의 입장 재구성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 26일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람객들의 폭발적 반응에는 사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 속 상황과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진실공방도 달아오르고 있다. 영화 제작진은 “98% 이상 진실”이라고 밝혔지만 법원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석궁 테러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사건의 단초가 된 김명호 전 교수의 재임용 거부가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데 따른 ‘괘씸죄’인지, 김 전 교수의 자질문제인지가 1차 쟁점이다. 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뭔지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도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3번째 쟁점은 영화의 빌미를 제공한 재판 절차상의 문제다.

26일 서울의 한 유명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포스터를 쳐다보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석궁 사건은 1996년 2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한 데서 시작된다. 영화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정확히는 이보다 앞선 사건이 있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1월 대학별고사 ‘수학2’ 과목 주관식 7번 공간 벡터 증명 문제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학과장인 채영도 교수와 이 문제 출제자인 이우영 교수는 모범답안을 만들어 따르라고 한다. 이를 거부한 김 전 교수는 채점위원에서 배제된다. 반년쯤 뒤인 같은 해 5~7월 수학과 교수들은 성균관대 교원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청원한다. 징계 사유는 학습 방해와 욕설, 비방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수학문제 오류 지적 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태도가 문제라는 대목도 들어있다. 교원징계위원회는 정직 3개월을 결정했다. 이듬해인 1996년 2월 성균관대 교원인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를 재임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김 전 교수는 재임용 탈락이 성균관대 수학과의 보복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법원이나 학교 측의 입장은 다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재임용 탈락의 진짜 이유였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수업시간 중 시위로 인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자 “저런 새끼들이 학생이냐” “저런 놈들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싶다”고 했다고 돼 있다. 또 “내가 내년에 학과장이 되면 과내 모든 서클을 없애버리고, 학생회도 없애버리겠다”고 말한 내용도 들어있다. 김 전 교수는 또 학칙에는 수업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출석해야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학점을 준 일도 있다.


이렇게 끝날 뻔한 사건에 의외의 변수가 등장했다. 2003년 2월 헌법재판소가 사립학교법 일부 조항에 문제가 있다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사립교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려면 구체적인 기준과 요건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조항을 문제 삼았다. 국회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05년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다.

법이 바뀌자 김 전 교수는 같은 해 3월 성균관대를 상대로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을 냈다.

새 사학법 규정을 소급 적용할 경우 학교 측의 사전 통지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측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면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봤다. 같은 해 9월 1심 법원은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장인 이혁우 부장판사는 소송 상대방인 성대 출신이다.

김 전 교수 측은 이것이 패소의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김 전 교수는 항소했다. 그러나 2007년 1월12일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교수에게 다시 패소 판결한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은 “ ‘연구실적 및 전문영역의 학회활동’ 기준에는 적합하지만 ‘학생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 능력과 실적, 품위유지’ 기준에 현저하게 미달한다”고 패소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 판결 사흘 뒤인 15일 박홍우 부장판사의 집앞에서 석궁 사건이 일어났다. 영화 속 석궁 사건의 발생 원인과 실제 법정에서 일어난 상황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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