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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멀쩡한 논 갈아엎더라" 13억 차익 LH 직원들 투기 정황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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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기 신도시로 추가 확정된 광명?시흥 지구에 LH 공사 직원의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모습. 장진영 기자 /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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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방법 등 내부 정보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사들인 것이다."

3일 방문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기 신도시로 지정된 이 일대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3기 신도시 지정 전 토지를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자체 조사를 통해 3일 "LH 직원 13명이 신도시로 지정된 지역에 12개 필지를 사들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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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매입한 땅에 심겨진 버드나무 묘목.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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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원 시세 차익 … "현금 보상받아도 투자금 회수"



이들의 신도시 내 토지 매입이 시작된 건 2018년이다. 박 모 씨 등 4명이 시흥시 무지내동 경기자동차과학고 옆 밭(면적 5905㎡)을 함께 매입했다. 이들은 당시 평당(3.3㎡) 108만원에 이 땅을 매입했다.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이 모 씨는 "2018년 토지주가 당시 시세인 평당 130~140만원 대에 내놓았던 땅"이라며 "토지주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가격을 많이 내려 급하게 팔았다. 지금은 180만원 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투자금의 80%가량 평가 이익이 난 것이다. 이 땅을 19억 4000만원에 산 박 모 씨 등은 현 시세 기준으로 13억원가량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2019년 초부터 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광명시 가학동과 시흥시 논곡동·무지내동 일원을 개발하는 '광명·시흥 테크노밸리' 토지주에 대한 보상이 진행되던 시기다.

공인중개사 송 모 씨는 "테크노밸리 토지 보상액이 공시지가의 180~200%까지 책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림동 일대도 호가가 평당 30~40만원씩 올랐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LH 직원들의 토지 매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다. 송 씨는 "2019년에 매입했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땅을 산 것"이라며 "현금 보상을 받더라도 충분히 투자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 많고, 임대수익 없는 농지 매입



일각에서는 "광명·시흥 지역은 시기의 문제였지 개발이 확정적인 곳이라 LH 직원들이 땅을 산 건 내부 정보를 활용한 투기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 원주민 민 모 씨도 2015년 이곳을 특별관리구역으로 묶을 때부터 10년 안에 개발될 것이라는 건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금액과 비교하면 대출액이 크고,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농지를 주로 매입했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참여연대와 민변 역시 “이들의 토지 매입 자금 중 약 58억원은 금융기관 대출로 추정된다”며 "토지 거래금액이 많고, 상당 부분 대출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들이 어느 정도 확신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작확인서 도장 찍어달라" … "묘목 심어놓고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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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쳐져 있고 문이 잠긴 땅.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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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땅 대부분은 전답(농지)으로 분류된다. 김 모 씨 등이 2019년에 매입한 과림동 논(답) 2개 필지 주변에는 울타리가 쳐 있었고,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논에는 버드나무 묘목이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인근에서 폐기물처리업체를 6년째 운영하는 우 모 씨는 "매일 보는 땅이지만, 주인이 바뀐 줄도 몰랐다"며 "2년 전 멀쩡한 논을 갈아엎고 나무를 잔뜩 심어놨다. 이후에 주인이 찾아온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광명시 노온사동에서 식물원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보통 경작을 중단한 농지에는 대추나무 등을 주로 심는다"며 "버드나무 묘목을 간격도 두지 않고 이렇게 심어놓은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땅을 산 LH 직원 중에 보상 담당자가 있다고 하던데, 어떤 나무를 얼마나 어떻게 심어야 보상을 잘 받을 수 있을지 자세히 아는 사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묘목이 심겨 있는 땅은 묘목에 대해 따로 감정해 토지보상가에 더한다.

과림동 통장 박 모 씨는 "무지내동 땅을 매입한 사람들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와 농지원부를 받기 위해 경작확인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더라. 분당에서 살면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던데 어떻게 농사를 직접 짓느냐고 돌려보낸 적이 있다"며 "나중에 보니 그 땅에 나무를 심어놨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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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이 매입한 땅에 심겨진 측백나무 묘목.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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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와 민변은 “LH 내부 보상규정을 보면 1000㎡를 가진 지분권자는 대토보상 기준에 들어간다”며 “일부 필지는 사자마자 ‘지분 쪼개기’를 했는데 (지분권자가 각각) 1000㎡ 이상씩 갖게 하는 등 보상 방식을 알고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토지 대장을 확인해보니 지난해 2월 장 모 씨 등 7명이 매입한 과림동 4개 필지의 경우 원래 3개 필지를 매입한 뒤 공유자 7명이 '지분 쪼개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도 측백나무 묘목이 심겨 있었다.



신도시에 대한 불신, 땅 투기 의혹은 기름을 붙인 격



이곳 주민들은 신도시 지정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 경기도와 함께 토지를 돌려주는 환지(換地) 방식 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광명시 가학동과 학온동 주변은 이미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가로 보상하고 환지도 적극적이다. 주민들은 강제 수용 방식의 신도시 개발에 불만이 많다. 보상금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여기에 기름을 붙인 격이다.

이곳에서 15년째 금형 공장을 운영 중인 박 모 씨는 "공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내부자료를 이용해서 투기했다는 사실이 용납이 안 된다"고 말했다. 광명시의 한 원주민은 "광명시 자체적으로 원주민들과 협의해 단계적으로 개발을 해 나갈 수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흥 =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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