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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0월 서프라이즈' 가능성? 북·미 다 '사진찍기' 회담 꺼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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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8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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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어 보였는데 의아했다. 지난달 4일 김여정의 담화로 시작된 북한의 공세가 같은달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한걸음에 내달은 후 연이어 4대 군사행동을 예고했다가 24일 아무런 설명 없이 ‘보류’한다는 다섯줄짜리 발표로 중단됐다. 북한이 지난달 9일 담화에서 한국을 ‘대적(對敵)’으로 삼겠다는 관계 규정을 철회하지 않았으므로 남북관계가 조만간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가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도록 한국은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는 발언이 소개됐다. 이런 구상이 “미국 측에 전달됐고, 미국 측도 공감하고 있다”는 청와대 설명으로 이어졌다. 한국 정부의 발표는 올 1월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대화를 대신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추동하겠다는 방침이 북한의 6월 공세로 사실상 실패하자 다시금 중재자 역할로 돌아서겠다는 방침으로 읽혔다.

마침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지난 2일(현지시각) ‘10월의 서프라이즈’ 가능성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하여 파장을 키웠다. 그러나 북한은 4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주창하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서뿌르게 중재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하고, 미국 인사들은 “공상가”라고 비판하면서 가능성 차단에 나섰다.



‘10월 서프라이즈’ 가능성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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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개성 공단에 위치한 남북 연락사무소 건물이 폭파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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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평양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 북미정상회담을 꺼리고 있다. 우선 북한은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그해 김정은의 4월 시정 연설을 통해 “조미쌍방의 이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여져야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서명)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같은해 10월 스웨덴 실무회담을 앞두고는 “조미실무협상은 수뇌회담에서 수표하게 될 합의문에 담아내는 내용을 논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라며 “그만큼 협상팀이 지닌 책임은 막중하다”고 밝혔다. 발언을 종합하면 실무협상에서 북한에게 충분히 유리한 합의가 문서상으로 만들어져야 최종적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서명하겠다는 것이다. 북한도 하노이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실무협상에 비중을 싣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가 있어야 실무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므로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래 제재 해제를 의미하는 ‘발전권’과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의 영구 중단 등을 포함한 ‘생존권’을 미국이 먼저 조치하지 않는 한 실무협상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하노이 악몽’ 경험…실무협상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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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5일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하기 위해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1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를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로 들어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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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리선권 외무상은 담화를 통해 북한의 풍계리와 동창리 폐기,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시험 중지 조치를 내세우면서 “미국이 합의일방으로서 지난 2년간 도대체 무엇을 해놓았는가를 주목해보아야 한다”고 미국을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양보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이 회담에 임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최선희는 4일 담화에서 다시 한번 “조미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자신의 재선을 위한 외교적 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강한 불만을 표출한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상황도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을 낮춘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래로 북한은 미국의 행정부가 바뀌면 미국이 북미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한다면서 비판해 왔다. 재선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합의는 북한에게 부담이 크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공포한 정면돌파 노선을 ‘장기전’으로 수행하겠다고 천명한 이유도 미국의 대선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협상 장기전 준비하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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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남북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에서 열렸다. 이날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가운데)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 위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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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관심사는 11월 대선에 맞춰져 있다. 전통적으로 대외정책이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의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된다. 따라서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려면 확실한 외교적 업적으로 선전이 가능해야 한다.

최소한 영변 핵시설 외에 고농축 우라늄 시설의 검증을 동반한 폐기 정도를 북한이 수용해야 트럼프에게 유리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미 행정부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한 북한에게 속았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다를 것이라고 공헌해 왔다. 존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영변-제제 해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에서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자신은 대선에서 패할 수도 있다”고 증언한다. 반면 김정은은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지속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현재 북한은 영변 폐기 안에서도 후퇴하여 미국의 선 조치만을 요구 중이다.



미국도 실무회담 중요성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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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산 제품 전시회에서 야구 배트를 들어 타격 자세를 잡았다. [REUTER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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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유사하게 트럼프 대통령도 이전 보다는 실무회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단순한 사진 찍기 식 정상회담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모양새이다.

북미가 우여곡절 끝에 실무회담을 개시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한계로 어려움이 더해져 11월 이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기가 쉽지 않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대선전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에 대면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임을 언급한 바 있다.

오는 8월말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유세전에 돌입하게 되어 미국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

전술한 한계를 다 극복하더라도 회담지 선정에 제약이 크다. 코로나19와 김정은의 이동 동선 등을 고려할 때 평양 또는 판문점 등이 후보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비상방역체계’를 가동 중인 북한이 대규모 인원을 동반한 트럼프의 방문을 허용하기 쉽지 않다. 판문점의 경우 북한과 미국 모두 극적 효과가 낮아진다는 측면에서 꺼릴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8월 지나면 미국 비우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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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일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전 국회의원을 내정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정원장,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임명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서훈 국정원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와 관련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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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할 때 한국 정부의 북미정상회담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더불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트럼프-김정은의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도 질문해야 봐야 한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달한 싱가포르 회담 시 트럼프의 “회담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알맹이 없는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승리를 선언하고 바로 떠날 것”이라는 발언은 북미정상회담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는 정상 간의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을 버리고 실무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드는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의미 있는 비핵화가 가능해 보인다.

더불어 지금은 한국 정부가 새로운 제안을 하기 보다는 대북정책 전반을 재점검할 때이다. 2018년의 환상에서 벗어나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파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위기를 관리하면서 한미 공조를 재건해야 한다.

특히 지난 1년 여간 북한의 막말과 도발에도 무조건 수용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간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간에도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호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오래 참고 북한을 포용하더라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과 언사는 반듯이 지적해서 고쳐 나가야 의미 있고 지속성 있는 남북관계를 쌓을 수 있다.

박원곤 한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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