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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임성일의 맥] 모두 '설마'할 때 박지성, 또 앞서가는 '진취적 거북이' 전북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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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K리그 행정가로 변신한다. 그가 K리그 최강 전북현대와 손을 잡았다. (전북현대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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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한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40)이 K리그 4연패에 빛나는 전북현대와 손을 맞잡았다. '어드바이저(adviser·이하 위원)'라는 명함을 갖고 구단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방면의 조언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전북은 지난 19일 "박지성 위원은 영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비상근 어드바이저 역할을 수행한다. 박 위원은 프로와 유소년 팀의 선수들의 이적과 영입, 육성 및 스카우팅, 훈련 시스템 제시 등 일정 부분의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도 겸하게 된다"고 밝혔다.

깜짝 발표였다. 박지성이 행정가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힘 쏟을 무대가 국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2017년 11월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으로 선임되며 행정가 첫발을 내디뎠으나 약 1년 뒤 사임, 동행이 길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박지성이기에 다시 한국 축구의 어떤 위치에 등장할 것이라는 짐작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K리그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제로에 가까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설마'했던 일을 현실로 만든 것은 전북의 과감한 추진력이었는데 중심에 새 사령탑 김상식 감독이 있다.

김상식 감독은 지난해 영국에 머물고 있던 박지성 위원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과 구단의 계획을 전했다. 김 감독은 "구단이 발전하기 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말로만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를 외친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는가"라면서 "생각에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자 싶었고, 그래서 (박지성 위원에게) 연락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물론 곧바로 '그럽시다'를 기대하진 않았고 좋은 제안이지만 지금은 여러 정황상 어렵겠다는 답변이 나왔다. 김상식 감독은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오라는 것도 아니다. 언제든지 전북현대 구단에 모셔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서 박 위원에게 진심을 전했다.

후배지만 예의를 갖췄다. 시쳇말로 '얼굴마담'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 아니었기에, 진짜로 구단의 발전을 위해 박지성이라는 인물의 경험이 필요하다 생각했기에 공을 들였다.

'OK' 사인이 나오진 않았으나 여지는 확인했고 가능성을 본 김상식 감독은 구단 실무자와 상의 끝에 본격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보고 받은 구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방향을 잡았고 백승권 단장과 허병길 대표이사를 넘어 정의선 구단주까지 관심을 갖는 '중점 사업'으로 판을 키웠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실을 맺는 것에 성공했다.

성사 이전 시도 자체가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 선수로도 K리그에서 뛴 적이 없는 박지성을 구단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이 파격이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도 아니고 전북현대와는 그 어떤 인연도 없는 박지성이다. 관련해 김상식 감독이 품었던 마인드가 꽤나 매력적이다.

김 감독은 "매사 다 똑같은 것 아니겠는가. 멋진 사람들은 다 애인이 있을 것이라 지레 겁먹고 접근조차 못한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두려움부터 앞선다"고 우습지만은 않은 농담을 던진 뒤 "200년, 300년 살 것도 아닌데 한번 해보자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천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처음을 회상했다. 그 도전이 결실을 맺었다.

김상식 감독은 "나라고 확신이 있어서 접근했겠는가. (박지성 위원이)정말 할 줄은 몰랐다"고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내가 '함께 하자'고 해서 그냥 성사 시킬 수 있는 박지성은 아니다. 그에 합당한 대우가 필요한 인물"이라면서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이번 일을 신경 써 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단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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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타공인, K리그를 이끌고 있는 전북현대다. 시작은 늦었으나 지금은 그 어떤 클럽보다 빠르다. (전북현대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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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전북이라는 클럽은 하위권을 전전하던 지방의 그저 그런 팀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전주는 양반의 고장이자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이 연상되는 도시였다.

2005년 여름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던 최강희 현 상하이 선화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정말 답답했다. 선수들의 의욕은 많이 떨어져 있었고 팬들도 반응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경기를 펼치고 승리해도 '그려 잘혔어~'라고 손뼉 치고 마는 이곳에 프로축구팀이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나도 고민이 됐다"고 초창기 팀과 연고지의 분위기를 회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축구계에서는 황무지에 가깝던 전주가 지금은 가장 뜨거운 축구의 도시가 됐다. 그리고 2009년에야 창단 후 처음으로 K리그 정상에 올랐던 전북현대는 사상 초유의 4연패를 포함, 8회 우승에 빛나는 최다 우승클럽으로 우뚝 섰다. ACL이 열릴 때마다 우승팀으로 거론되는 전북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한 프로축구계 관계자는 "지금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은 어디라 생각하는가. 지금은 전북현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전북이 막 우승권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이전까지의 리딩 클럽들은 전북을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한두 해 우승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부터 '성적은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러움과 시기의 경계선에 시선이 있었다"고 과거를 짚은 뒤 "그러나 지금은 전북이 다른 팀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상식 감독은 "전북은 언제나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팀이다. 우승에 대한 자신도 있다. 하지만 9연패, 10연패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우승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 뒤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어떤 상황에서든 건강하고 튼튼하게 운영되는 진짜 명문 클럽으로 거듭나야한다"고 궁극의 지향점을 언급했다.

모두의 '설마'를 계속해서 뒤집고 있는 전북현대다. 출발은 늦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다. 과감성까지 장착한 '진취적 거북이' 전북이 또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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