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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동국이라 쓰고 오뚝이 또는 멘탈갑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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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현역 은퇴를 선언한 라이언킹 이동국 (전북현대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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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임성일 기자 = "센터포워드는, 골을 넣지 못하면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자리다.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이겨내야 하는 자리다. 회피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그것을 감내해야한다. 다른 포지션들과 달리 외국인 공격수들과의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경기장에 나갈 수 있고 그래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멘탈'을 먼저 갖춰야한다."

K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 이동국(41)이 23년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축구화를 벗는다.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앞서 이동국은 26일 자신의 SNS에 "올 시즌을 끝으로 저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습니다"라고 적으며 현역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말끔한 슈트 차림으로 회견장에 들어선 이동국은 "구단에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줘서 행복하게 떠날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떠나는 선수는 많지 않을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소개했다.

매 시즌을 앞두고 '올해가 진짜 마지막'이라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이동국이지만 시즌이 끝날 때에는 "1년 더 뛰어도 충분한 경쟁력"이라는 평가와 함께 당당히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했는데, 몸 상태 보다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이동국은 "지금껏 선수생활을 하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지내왔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왔다. 그런데 올해 장기부상 때는 조급해하는 날 봤다"면서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과연 '멘탈갑'다운 선택이었다.

높은 위치에 올라간 선수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동국은 정신력이 아주 뛰어난 선수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극복이 어렵겠다 싶은 시련과 좌절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선수였다.

23년 동안의 프로생활, 20년 동안의 국가대표 생활 등 마냥 꽃길만 걸었던 것 같으나 사실 이동국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가 없다.

이동국 스스로 "당연히 발탁될 것이라 생각했던" 2002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떨어진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2006 독일 월드컵 직전에는 십자인대파열이라는 부상으로 낙마했다. 이동국은 "2006년은,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준비했을 때"라며 아쉬움을 피력했을 정도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소위 '물회오리슛'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은 것을 포함, 조롱에 가까운 수모를 감수해야했던 것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서두에 전한 2014년 인터뷰 내용처럼 이동국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이겨내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이동국은 "2002월드컵 탈락은 내 축구인생 최악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때의 아쉬움이 지금까지 현역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보약이 된 것 같다"는 말로 절치부심하는, 또 오기를 품는 계기가 됐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독일월드컵 직전의 부상은 사실 청천벽력과 다름없는 재앙이었다. 어지간한 선수들은 운명을 탓할 수 있을 만큼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고, 수술과 재활을 거친 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미들즈부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보통 의지로는 쉽지 않을 일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동국은 K리그 경기와 각급 대표팀 경기를 모두 합쳐 844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한국인 최다 기록이다. 이동국 스스로 "나도 이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 "많은 기록이 있지만 이 출전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바라봤다.

상대에게 쓰러지기 전에,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기 전 다양한 형태의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임을 떠올릴 때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한 선수였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는 나는 참을 수 없었다"던 이동국. 후배들이 진짜 배울 것은 발리슈팅이 아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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