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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임성일의 맥] K리그 '대행'의 시대, 누구에게 무슨 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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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대구FC 이병근 감독대행 2일 오후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2020’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대구FC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2020.8.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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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이임생 감독과의 계약 직전 '없던 일'을 선언하는 등 아마추어 같은 행정으로 팬들과 축구계의 질타를 받았던 인천유나이티드가 다시 발 빠르게 움직여 7일 조성환 전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래도 공백기를 최소화했다. 이로써 인천은 임중용 감독대행 체제를 끝내고 조성환 감독 체제로 새 출발한다.

인천은 벗어났으나 아직 2020시즌 K리그1에는 3개의 팀이 '감독대행'과의 어색한 동행을 하고 있다. 수원삼성은 이임생 감독이 물러난 후 주승진 감독대행 임시 체제고 FC서울은 최용수 감독이 떠난 뒤 김호영 감독대행이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대구FC는 시작부터 이병근 감독대행이 이끌고 있다.

감독대행은 '감독을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며 따라서 임시직 뉘앙스가 강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휘봉을 맡기고는 있으나 '진짜 감독'이 온다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처지로 비춰진다.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렇다. 과연 이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해당 지도자에게 또 선수들에게 무슨 득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언급한 세 팀의 상황이 각기 다르다. 일단 수원 주승진 감독대행은 진짜 임시직이다. P급 라이선스가 없다. P급 자격증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인정하는 최상위 지도자 자격증으로, 프로팀의 지휘봉을 잡으려면 이 라이선스가 있어야한다.

프로축구연맹은 기존 감독의 사퇴, 경질 등의 이유로 P급 자격증이 없는 지도자가 팀을 이끌 경우 최대 60일까지만 허용한다. 따라서 7월17일자로 주승진 감독대행을 앉힌 수원은 9월 중순 전까지 P급 자격증을 소유한 감독을 찾아야한다. 인천의 임중용 감독대행도 P급이 없었다.

그러나 대구와 서울은 상황이 다르다. 김호영 감독대행이나 이병근 감독대행은 모두 P급 자격증이 있다. 그대로 계속 팀을 이끌어도 문제없다. 그래서 또 문제다.

FC서울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호영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울 관계자는 "김 감독대행 체제로 올 시즌을 마무리할 것인지, 차기 감독을 선임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자세다.

한 축구 관계자는 "선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지금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사람이 계속 팀을 이끄는 것인지 아니면 조만간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는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따라 가야하는 이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대행 꼬리표를 붙여두고 있으면, 과연 누가 좋을까"라고 물음표를 던졌다.

뉴스1

1일 오후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2020’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 앞서 김호영 FC서울 수석코치가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2020.8.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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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에게는 요긴한 장치일 수 있다. 감독과 감독대행의 대우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아주 단순한 접근부터, 감독 모시는 것보다 돈도 덜 쓸 수 있다.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감독대행은 감독보다 손쉽게 내칠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당사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라는 선의의 이유를 대곤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꼬리표라는 시선이 더 많다. 만약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면, 대구FC는 이쯤에서 잘하고 있는 이병근 감독대행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시즌 개막 직전에 안드레 감독과 갑작스레 결별한 대구는 이병근 수석코치를 급히 감독대행으로 격상시켜 시즌을 시작했다. 안드레 감독 지휘아래 2020시즌을 그렸던 터라 당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안팎의 시선이 불안했는데, 너무 잘나가고 있다.

14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대구FC는 7승4무3패 승점 25점으로 울산현대(승점 35), 전북현대(승점 32)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26골을 넣는 동안 16실점에 그쳐 득실차가 +10인데, 이 역시 울산(+24)과 전북(+14) 다음이다. 결과와 내용 모두 준수하다는 의미다.

빠르고 호쾌한 대구만의 스타일을 다듬고 있으며 공부하는 지도자라는 평가답게 상대에 대한 맞춤 전술도 뛰어나다. 지난 2일 수원 원정에서는 전반 35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선수 1명이 퇴장 당하는 수적 열세를 딛고 1-0 승리를 거두는 운영의 묘를 보이기도 했다. 후반 32분에 교체로 투입시킨 에드가가 후반 42분 결승골을 넣었다. 용병술이 적중한 셈이다.

요컨대 팀을 잘 이끌고 있다. 스쿼드가 두껍지 않은 시민구단 대구가 호화군단이자 우승후보인 울산과 전북 다음이라면 감독의 지도력에 박수를 보내는 게 맞다. 잘못할 수도 있으니 잘 하는지 좀 보겠다고 달아둔 감독대행일 것이다. 잘못할 때의 결정은 냉정하고 빠른데 잘할 때 꼬리표 떼어주는 것은 더디고 인색하다.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일단 감독대행 체제로 간다는 구단이나 호성적을 이끌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구단이나 보기 좋지 않다.

책임을 안겼으면 상응하는 권한도 줘야한다. 대행은, 코치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은 감독인데 지닌 힘은 코치에서 큰 차이 없다면 불공평하다. 좋은 지도자가 좋은 선수를 만들어낸다. 뛰어난 감독을 키워내야하는 것도 축구계의 몫인데, 축구판 스스로 감독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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