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기억할 오늘] 첨리스 이야기(10.18)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첨리스'는 1922년 금주법 시대에 문을 연 뉴욕의 유명한 '불법 비밀 밀주' 술집으로, 역사유적은 아니지만 뉴요커들에겐 그에 버금가는 랜드마크로 통한다고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오래된 술집 한 곳이 2007년 문을 닫았다는 소식, 새롭게 개장하기 위해 2012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 문을 닫은 지 10년 만인 2016년 10월 18일 술집이 아닌 식당으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 등을 뉴욕타임스나 포브스쯤 되는 매체가 버젓한 기사로 소개했다면 믿기는가. 사실이다. 그 술집이 바로 금주법 시대의 전설 ‘첨리스(Chumley’s)’다. 재개장 직전인 2016년 8월 포브스는 새 ‘첨리스’는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칵테일 외에 햄버거와 치킨요리, 리조토 등을 팔게 될 것이라고 메뉴까지 소개했다. 뒤뜰로 통하는 ‘첨리스’의 뒷문은 영구 폐쇄했지만 베드퍼드(Bedford)거리로 난 오래된 나무 정문은 그대로 쓰고, 술집 시절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앞으로도 간판은 걸지 않기로 했다고 썼다.

‘첨리스’는 1922년 불법 영업을 시작했다. 르랜드 첨리(Leland S. Chumley)라는 한 사회주의자가 대장간이던 건물을 개조해 연 ‘첨리스’는 1층 창이 없어 비밀 영업에 적합했다. 뒷문으로 나서면 벽을 맞대고 선 건물 네 채와 공유하는 마당으로 이어져 단속을 피하는 데도 유리했다. 그래서 당연히 간판이 없었고, 그냥 ‘첨리의 (술)집’으로 통했다. 마피아의 근거지 시카고가 밀주 양조의 메카였다면 뉴욕은 최대 밀주 시장이었다. 20년대 중반 수백 곳에 이르던 주류 밀매점(speakeasy)들 가운데서도 ‘첨리스’는 질 좋은 술을 맘 편히 마실 수 있는 최고로 술집으로 그 명성이 은밀히 자자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작가들, 또 이후 비트세대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포크너와 유진 오닐, 존 스타인벡 같은 이들이 첨리스의 단골이었고, 더러는 거기서 작품을 쓴 이들도 있다고 한다.

‘eighty six(86)’는 ‘없애다, 내쫓다, 파묻다’ 등의 의미로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된 미국식 은어다. 저 말이 첨리스의 주소(베드퍼드스트리트 86번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진상 손님을 대문 밖 저 주소 명패 아래로 내쫓는 걸 저렇게 불렀다는 거다. 뇌물을 받은 경찰이 단속 전에 미리 손님들을 뒷문으로 내보내라는 신호로 주소를 바깥에서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근거는 없다. 최윤필 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