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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터뷰②] 김정은 “카메라 밖에선 ‘허허허’ 바보같이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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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김정은은 남편을 붙잡고 싶어하는 심재경을 연기하며 “슬픔과 페이소스도 느꼈다”고 했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김정은은 아직도 이름 석자만으로도 유쾌함을 주는 배우다. 흥행 여배우로, 로맨틱 코미디 여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40대 후반인 지금도 여전히 정상의 자리에 있다.

그녀가 지금도 최고의 여배우로 통하는 것은 단순히 시청률 수십 프로를 기록한 흥행작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왕관의 무게를 지혜롭게 견디는, 친절하고 사람을 기본 좋게 하는 에티튜트와 겸손함, 배려심을 갖고 있는 배우다. 이번 서면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의 이런 위트과 매력이 듬뿍 담겼다.

그는 회신 서두에 “직접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정말 아쉽다”며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답변하고자 3일을 꼬박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글이 좀 조악하고 오타 투성이라도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며 “편의상 존대로 작성 못한 것을 이해해달라”는 특유의 유머도 덧붙였다.

Q. 이번 드라마는 부부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이번 드라마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살고 있는 한 부부에게 일어난 폭력적인 사건을 매우 과장되게 펼쳐놓은, 현실에는 일어나기 힘든 판타지물이었다. 희생과 인내를 강요 당하는 어찌보면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에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내들의 입장에서 통쾌함을 줬다 생각한다. 외도를 저지른 남편을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가득했던 자작극으로 덫을 놓고, 계속해서 50억을 이용해 가장 우아한 척 고상한 척하며, 반대로 가장 속물적인 방법으로 남편을 끊임없이 현혹시키고, 그 지긋지긋한 50억으로 남편을 쥐락펴락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들은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속물적인 방법으로라도 남편을 붙잡고 싶어 하는 심재경의 매우 양가적인 감정을 공감하며 너무나 안쓰러웠다. 슬픔과 페이소스도 느꼈다.

Q. 결혼 5년차인데, 자신의 결혼생활도 반추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의 점점 늘어나는 수명을 고려했을 때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평생 한사람만을 사랑하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대표적으로 정의내리는 가슴 뛰는 설렘은 오래 지속되는 힘이 없고, 대신에 점점 시간이 갈수록 다른 형태의 감정들이 부부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의리든 존경이든 동지애든. 결혼이라는 제도는 수많은 인간관계 중 가장 은밀하고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렵고 깨지기 쉬운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지키고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에 지켜냈을 때 더 큰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사랑을 바탕으로 했기에 선택과 책임을 자꾸 망각하게 되지만, 계약과 약속은 그냥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행하기 위한 노력은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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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아직은 행복한 결혼 5년차이지만, 드라마를 하면서 자신의 결혼생활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Q. 이를테면?

가장 가깝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아내가 전혀 다른 사람 같다면? 혹은, 독인 줄 알고도 마시게 되는 것 그게 바로 결혼이다. 뭐 이런 말들을 들으면, ‘대체 결혼이란 걸 왜 해?’ 하고 싱글들이 물을 거다. 사랑하니까 결혼하고 같이 있고 싶으니까 부부가 된다고 하는데, 사랑이란 감정은 점점 희석되어지기 마련이다. 근데 제도적으로 묶여 같이 사는 부부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가? 아이를 낳아서? 동지애로? 가족으로? 아마도 너무나 다른 입장 차가 존재하고 복잡미묘한 문제다. 여자와 남자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같은 질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 토론되어질 것 같다.

Q. 개인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노력하나

약간의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관리라고 하면 너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하는 이미지 관리는, 그냥 내가 하는 행동을 저 사람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엄마 앞에서 이미지 관리 따윈 안하고 산다. 근데 부부가 붙어살다 보면 엄마보다 더 편해지고 가까워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부부는 엄마 아빠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무슨 부부 문제 전도사 같은데... (웃음) 나도 어려운 문제 같다. 하지만 노력할 거다.

Q. 40대 여배우로 남모르는 즐거움, 책임감, 고민이 있다면

여성의 이야기, 여자 감독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 특히 내가 좋아하는 소식이 궁금한 여배우 선배님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 나조차도 ‘앞으로 놀지 말고 좋은 작품 있으면 부지런히 해야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확실히 여성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이야기들이 남자들의 이야기와 좀 다른, 깊고 복잡하고 미묘하고 풍부한 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남자들은 좀 모든 면에서 심플하지 않은가. 물론 속도감, 시원시원한 맛은 있겠지만 여유나 여백, 여운은 덜하지 않을까.

현장에 힘든 일을 하는 스태프들 중 카메라 조명팀에 여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도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면서 놀랐던 부분이다. 부디 잘 견뎌내어 여성 카메라 감독님과도 일해보고 싶다.

어느덧 현장에서 내가 제일 왕고참 급에 속해졌다. 어릴 때 현장에서 싹싹하고 애교 많고 귀여움 받으려고 하던 입장에서, 내가 왕언니 왕누나처럼 품어주는(?) 기쁨이 생긴 것 같다. 내 눈엔 스태프 동생들이 다 너무 귀엽게 보이고, 현장에서 늘 장난치고 이뻐하고 또 그게 큰 즐거움이었다. 요즘 같이 다들 힘든 일 꺼려하는 시대에 어린 친구들이 묵묵히 힘든 일 해내는 것을 보면 참 기특하다. 늘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그냥 잘 견뎌내기만 해 제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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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동갑내기 남편이 “전문가적 관점에서 모니터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제공ㅣ뿌리깊은나무들/매니지먼트 레드우즈


Q. 평범치 않은 ‘심재경’ 역에 대한 현실 남편 반응은?

물론 열혈 시청자로서 매우 응원하고 지지하고 환호해줬다. 처음 드라마를 보고나서 좀 놀란 눈치였다. ‘이렇게 디테일 할지 몰랐다’며 ‘왜 넷플릭스에 안 팔았냐’고 난리난리였다. 내가 파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웃음) 미국 중국 많은 곳에 팔렸다고 하니, 홍콩 중국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홍보를 많이 해줬다.

남편은 이제 어느덧 5년차 여배우의 남편으로서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모니터를 해주려고 노력한다. 꽤 예리하게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디테일한 면을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던 몇몇 장면들은 너무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절대 혼자 밤에 보면 안되겠다며 깜짝 놀란 반응이었다.

11월에 서울에 도착해서 격리 후에 지금은 같이 있는데, 가끔 내가 재경이처럼 보여서 무섭다고 종종 얘기한다. 가끔 웃을 때 무서우니 그렇게 웃지 말라고도 한다.

Q. 대중에겐 늘 유쾌한 배우다. 자신의 삶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한 지점은 뭔가?

솔직히 개인적인 내 삶은 즐겁고 재미있고 웃기게 살고 싶다. 카메라 앞에서는 집중하고 현장에서는 치열하게 일할지 모르겠다. 어릴 땐 개인적인 삶도, 괜히 혼자 있을 때도 똑똑한 척하고, 모든 만남과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뭐 그런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의미가 좀 없으면 어떤가. 그냥 서로 재미있고 웃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든다. 카메라 불 켜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냥 ‘허허허’ 거리며 바보같이 살고 싶다.

Q. 코로나19 시대에 행복감을 찾는 자신만의 방법은?

정말 슬프고 화가 나고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다들 너무 잘 실천하고 있으니 그래도 잘 견뎌내면 좋은 날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밖을 쉽게 나가지 못할 때 정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결혼하고나서 화초가 강아지처럼 사랑을 주면 잘 자라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쉽게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 정원 월동 준비로 나무에 짚단도 감았다. 빨리 따뜻한 봄이 와서 파란 잎과 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가족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잘 계획하게 됐다. 소소하게 집으로 불러 밥 먹고, 차 마시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 우리 모두 잘 견뎌내길 기도한다.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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