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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해고가 정당? 몰상식하네” 美서 저항의 아이콘 된 대법관

조선일보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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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해고가 정당? 몰상식하네” 美서 저항의 아이콘 된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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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대법원이 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 등 연방 기관 열아홉 곳의 구조조정과 직원 대량 해고를 목적으로 내린 행정명령이 당분간 실행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실행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임시 조치이며 행정명령의 적법성 여부는 본안 소송에서 다툴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트럼프가 거둔 사법적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관 아홉 명 중 커탄지 브라운 잭슨(55)만 반대 의견을 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로이터 뉴스1

커탄지 브라운 잭슨. /로이터 뉴스1


잭슨은 15페이지 분량 소수 의견에서 “이 결정은 입법부를 희생시키면서 행정부의 과도한 권력 확대를 당장 허용하고 있다”며 “국민은 기본적인 정부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잭슨은 트럼프 손을 들어준 동료 대법관들을 향해 “왜 법원이 나서서 대통령의 명령을 풀어주는지 알 수 없다. 이번 결정은 매우 유감스러울 뿐 아니라 오만하고 몰상식한 결정”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가 비판한 동료 중에는 보수 성향 대법관 여섯명뿐 아니라, 이들과 의견을 같이한 진보 성향 소니아 소토마요르(71), 엘리나 케이건(65) 대법관까지 포함됐다.

그가 전임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때 지명된 유일한 대법관이자 가장 최근 합류한 ‘막내 대법관’이고, 첫 흑인 여성 대법관으로 소수계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잭슨의 ‘홀로 반대’는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10일 인디애나주 변호사 모임에 참석해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 상황을 걱정한다”며 트럼프를 재차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대법원은 누구든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 시민권을 받는 제도를 없애려는 트럼프의 조치에 일괄 제동을 걸려는 하급심 법원 결정을 무력화했다. 이때 반대편에 선 세 진보 대법관 중에서도 잭슨의 ‘분노’는 두드려졌다. 그는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경멸하는 문화를 조성했으며 이는 통치 기관의 몰락을 가속하고, 결국엔 집단적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쏟았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시대의 대표적 저항자(CNN)” “트럼프뿐 아니라 동료 대법관들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CBS)” 같은 표현으로 잭슨을 조명하고 있다. 잭슨은 마이애미에서 자라 하버드대 학부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재판연구원(law clerk) 등을 거쳐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 판사 재직 중 2022년 2월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바이든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잭슨은 자신이 보좌한 브라이어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밝히자 유력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흑백 분리 교육을 받으며 인종차별을 경험한 부모는 잭슨을 키우며 흑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이름 ‘커탄지 오니이카’는 아프리카 지역어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서아프리카 미국 평화 봉사단으로 일한 친척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잭슨의 모습이 ‘나는 결연히 반대한다’는 말로 상징되는, 거침없는 소수 의견으로 유명한 진보 아이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셸 굿윈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는 미 법률 매체 코트하우스 뉴스서비스 인터뷰에서 두 사람을 견주며 “잭슨의 소수 의견은 풍부한 판사 경험과 미국인으로 지내온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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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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