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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쓰는 돈만 연 1300조원…나토는 정말 '무임승차' 하나 [세계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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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쓰는 돈만 연 1300조원…나토는 정말 '무임승차' 하나 [세계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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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최저임금은 금지선일 뿐…공공 비정규직에 적정임금 지급"
미국, 나토 전체 국방비 66% 지불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2022년 11월 라트비아 아다지 군사기지에서 13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참여한 합동훈련이 열리고 있다. 가장 왼쪽부터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국기가 보인다. 아다지=EPA 연합뉴스

2022년 11월 라트비아 아다지 군사기지에서 13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참여한 합동훈련이 열리고 있다. 가장 왼쪽부터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국기가 보인다. 아다지=EPA 연합뉴스


집단방위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한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회원국들이 함께 반격에 나서도록 돼 있습니다. 나토는 회비를 따로 걷지 않습니다. 대신 각국이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부분를 국방비로 지출하도록 원칙을 정했습니다.

이 측면에서 보면 나토는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엔 유리하고 경제 대국엔 불리한 구조입니다. GDP가 작은 나라는 평소 적은 금액의 국방비를 지출하지만, 적의 침공을 받은 경우 군사적으로 더 강한 다른 회원국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GDP가 큰 부자 나라는 절대적인 국방비 지출액도 큰 데다, 자신보다 약한 다른 회원국들에 실질적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이 나토를 통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토 회원국 중 가장 부유한 미국은 지난해 국방비로 9,677억 달러(약 1,352조 원)를 썼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많이 쓴 독일(977억 달러), 영국(821억 달러)과 비교해도 약 10배, 혹은 그 이상입니다. 지난해 기준 나토 회원국이 지출한 전체 국방비(1조4,069억 달러)의 66.27%가 미국이 쓴 돈이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나토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올리겠다는 회원국들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작년 기준 나토 회원국은 평균적으로 GDP 2.2%만을 국방비로 썼습니다. 하지만 GDP에 따라 국방비를 산정하는 기존 방식은 그대로이기에 앞으로도 미국은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국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그저 선의만으로 유럽의 안보를 대신 책임져 주고 있는 걸까요? 정글 같은 국제사회에서 공짜는 없죠. 과거에도 지금도 미국은 나토를 통해 얻는 정치·경제적 이익이 있습니다.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 사이 완충지대 서유럽을 지키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양분됐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각 진영의 수장이었고, 냉전이 시작됐습니다. 지금이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냉전 시기 미국은 공산 세력, 즉 소련의 확장을 막는 게 국가적 목표였습니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서유럽이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 대륙 안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니까요. 유럽 대륙 전체가 공산화되는 건 미국 입장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였습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끼어 있는 서유럽이 공산화된다면, 미국은 소련과 대서양을 마주 보고 직접적으로 대치하게 되기 때문이었죠.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한 유럽과, 서유럽이라는 완충지대를 확보하려는 미국.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1949년 4월 나토가 탄생했습니다.

1949년 4월 4일 미국 워싱턴에서 나토 창설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나토 홈페이지 캡처

1949년 4월 4일 미국 워싱턴에서 나토 창설 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나토 홈페이지 캡처


나토의 핵심인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가 나토 헌장 5조에 담겨 있습니다. 소련 입장에선 미국을 공격하는 것보다 서유럽 국가를 침공하는 게 위험부담이 덜했습니다. 군사력도 미국보다 약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우니까요. 나토 헌장 5조는 이런 서유럽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소련이 서유럽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에 나서겠다는 경고였던 셈이죠.

소련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데리고 1955년 나토에 대항하는 집단방위체제인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창설하고, 1991년 소련 붕괴 전까지 대치를 이어갑니다.

유럽 핵개발 억제… 국제정치 경우의 수 줄여


나토는 냉전 시기 서유럽 국가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1950, 60년대 세계의 여러 국가가 핵개발을 모색했습니다. 서유럽에서도 독자적으로 핵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이 일었지만, 미국이 나토를 통해 핵우산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실제 개발에 나서진 않았습니다. 핵우산은 나토 국가가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대신 핵으로 보복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기세를 몰아 미국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계를 완성하면서 세계의 핵보유국을 제한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프랑스와 영국은 나토 창설 이전부터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핵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쿠퍼스타운 근처에 위치한 냉전시절 핵미사일 발사기지 시설을 2009년 8월 관리 직원이 설명하고 있다. 쿠퍼스타운=AP 연합뉴스

미국 노스다코타주 쿠퍼스타운 근처에 위치한 냉전시절 핵미사일 발사기지 시설을 2009년 8월 관리 직원이 설명하고 있다. 쿠퍼스타운=AP 연합뉴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동맹국인데, 핵무기가 없는 게 미국에 무슨 이득이 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단 미국 입장에선 적국이든 동맹국이든 핵무기를 가진 나라의 수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핵 보유국과 미보유국의 협상력은 국제사회에서 천지 차이죠. 미국은 서유럽의 핵 보유를 제한해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행위자를 제한했습니다. 목소리 큰 다른 나라가 없으니, 국제정치에서 미국이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도 줄었습니다. 게다가 서유럽 국가들의 개별 협상력이 떨어지니, 자유진영의 창구를 미국으로 단일화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냉전 이후에는?...잠재적 경쟁자 EU 사전 차단


1991년 12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이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냉전도 끝났습니다. 공산권의 집단방위체제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됐습니다. 나토 역시 해체 수순을 밟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은 냉전 이후는 물론 지금까지 나토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0년 7월 소련 수도였던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듬해 12월 소련은 붕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 7월 소련 수도였던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듬해 12월 소련은 붕괴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련이 없는데도 미국은 왜 나토를 통해 유럽 방위를 돕고 있는 걸까요? 국제정치학계에선 잠재적 경쟁자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책략이라고 해석합니다. 라잔 메논 뉴욕시립대 정치학 명예교수는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유럽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 유럽은 권력의 중심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며 "미국이 전략적으로 나토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중국이라는 거대 경쟁자가 생겼지만, 당시 소련이 사라진 세상에서 추후 미국의 경쟁자가 될 만한 후보는 나토 회원국이 중심이 된 유럽연합(EU)뿐이었습니다.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은 EU라는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잘라버려야 했습니다. 미국이 EU의 안보를 대신 책임져 주는 한, EU가 미국에 도전할 일은 없겠죠. 미국은 나토를 통해 국방비를 지원하면서 유럽을 발아래 두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유럽 재무장론 부상… 나토의 미래는?


실제로 그간 유럽은 미국에 의존해 국방비를 절약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흔들기 영향으로 '유럽 재무장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핵을 보유한 프랑스는 미국 대신 유럽 국가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고, 독일은 나토 국가들 중 가장 빨리 국방비를 올리고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모인 각국 정상들이 지난달 24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나토 회원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대로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로 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모인 각국 정상들이 지난달 24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나토 회원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대로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로 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유명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나토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동맹"이라면서도 "지금은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신뢰는 국제정치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상대의 배신 가능성을 감수한 협력을 통해서만 쌓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지금의 나토를 보면, 가장 쉽게 깨지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크게 데인 유럽은 나토에 대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사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나토에 우호적인 인물이 당선된다고 해도, 미국이 언젠가 유럽을 버릴 수 있다는 의심은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동맹, 나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