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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유명한 감독으로 사는 법 [육상효의 점프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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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유명한 감독으로 사는 법 [육상효의 점프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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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9일 서울 용산구 시지브이(CGV)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영화 티켓을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19일 서울 용산구 시지브이(CGV)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영화 티켓을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상효 | 영화감독





한 단체에 특강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젊은 여직원 한분이 펜과 종이를 가지고 다가왔다. 사인 좀 해달라고 했다. 난 “내가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데…”라고 겸양을 보이며 종이와 펜을 받았다. 사인하려고 종이를 보니, 종이는 특강료에 대한 증빙서류였다. 민망한 여직원 얼굴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영화감독의 유명도에는 등급이 있다. 전 국민이 얼굴을 아는 영화감독이 최고 등급이고,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아는 영화감독이 그다음이다. 얼굴과 이름은 몰라도 연출한 작품의 이름이 듣는 사람에게 반가운 반응을 촉발하는 감독이 그다음이고, 연출한 작품의 이름조차 한참 설명해야 겨우 들어봤다는 반응을 받는 감독이 그다음이다.



세번째까지가 유명 감독이라면, 네번째에 속한 나는 적당히, 소박하게 유명한 감독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누가 나를 영화감독이라 소개하면, 내 얼굴과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은 작품을 묻는다. 묻는 사람들은 ‘서울의 봄’이나 ‘파묘’ 같은 영화 제목이 나올 것을 기대하지만, 모든 감독이 그런 작품을 만든다면 한국 영화의 한해 총관객이 10억명은 될 것이다. 말해도 못 알아들을 것을 겁낸 내가 “유명하지 않은 영화라서…”라고 주저하면, 어느 자리에나 있는, 영화 지식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꼭 나선다. “좋은 작품을 많이 했어요. ‘붕가붕가’(방가방가)도 만들고, ‘나의 용감한 형제’(나의 특별한 형제), ‘삼일의 여행’(3일의 휴가)도 만드셨어요.”



50대부터는 고유명사를 소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화감독을 만나면 갑자기 영상 애호가가 되어 자신의 지식을 확인받으려 한다. 조선시대 호적제도나 고분자공학보다 얘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참 전에 우연히 끼게 된 인문학자들의 자리에서 한 50대 역사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테레비에서 ‘부족국가’ 재밌게 봤어요.” 내가 말했다. “그 드라마는 아마 ‘아스달 연대기’가 아닐까요?” 지식이 너무 많아서 드라마의 배경 시대와 제목이 기억회로에서 교란된 것이다. 옆에 있던 영문학자가 나선다. “난 텔레비전보다는 영화를 주로 보는데, 최근에 ‘아라비안나이트’를 봤어요.” 그즈음에 이런 제목의 영화는 없었다. 아마 ‘알라딘’일 것이라고 말해줬다. 좌중의 무지를 견디기 힘든 국문학자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연기가 아니겠냐?”고 과시적으로 말한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소담 배우가 최근 여배우 중에서 제일 연기를 잘한다고 봐요.” 나는 점잖게 “이솜이란 배우가 있고, 박소담이란 배우가 있는데, 이 중 누굴 얘기하나요?”라고 반문했다. 국문학자가 머쓱해진다.



그 틈에 철학자가 마침내 나선다. “아파트 앞에서 가끔 마주치는 배우가 있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난다”고 한다. 출연 작품을 물으니 당연히 모른다고 한다. 이름도, 어느 작품에 출연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맞히라는 요구는 철학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 즉 딜레마에 가깝다. 동료 여배우와 결혼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그 여배우의 이름도 모르고, 출연 작품도 당연히 모른다. 좌중의 인문학자들이 추리를 시작한다. 인문학은 과학적 논증이 아니라 사고와 유추를 통해서 진리를 향해 가는 학문이다. 철학자는 남자 배우는 잘생겼고, 여배우는 예쁘다고 한다. 철학자가 한 말은 배우라는 보통명사를 동어반복적으로 다시 설명한 것이다. 배우는 대부분 잘생겼고, 아름답다. 철학자가 단서를 하나 더 내놓는다. 부인인 여배우가 성격이 사납다고 한다.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 단서가 내게 힌트를 준다. 필시 이 성격은 그 배우의 진짜 성격이 아니라 배역의 성격일 것이다. 그런 배역을 맡다가 동료 배우랑 결혼한 여배우로 내 추리의 범위를 좁힌다. 마침내 내가 최종 선고 하듯이 말한다. “그 커플은 배우 최원영씨와 심이영씨일 것 같네요.”



하지만 50대 학자들에게 연예인의 이름이란, 기의는 없고 기표만 있는 공허한 기호이다. 부지런히 휴대폰 검색을 하고서야 표정들이 밝아진다. 철학자는 심지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표정이다. 난 무의식의 아득한 심연으로 다시 빠질 궁금증을 구원한 신묘한 현자가 되어 식대 분담금을 면제받는다. 적당히 유명한 감독으로 사는 아주 적당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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