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미중 경쟁 시대서 새우 등 터지는 해외파
'中 가전제품 여왕'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
"스파이 위험...해외 출신 절대 채용 안해"
STEM 분야 인재 유치 사활 분위기에 찬물
“중국 대학을 나온 우리 인재만 양성할 겁니다. '하이구이(海歸·해외 유학파)' 중에는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게 누군지 알 수 없잖아요."
중국의 '가전제품 여왕'으로 불리는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의 최근 발언이 중국 사회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인재 채용 방침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중국인을 노골적으로 배척한 그의 발언이 담긴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관련 해시태그 조회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해외 출신 인재에 대한 그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중국 매체 '난펑촹'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의 1만 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재는 모두 중국 대학 출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회사의 문화라고 설명하면서 "하이구이가 꼭 나쁘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하이얼·메이디 등 동종 기업의 해외 유학 인재 비율은 10%를 넘지만, 거리전기 R&D팀의 해외 유학 비율은 0.5% 미만이다.
거리전기 불매 운동까지 거론될 정도로 중국 사회는 비판 여론으로 들끓었다. 신경보는 "낙후한 고용 개념을 드러냈다"며 개인의 간첩 사건을 확대해 귀국자 집단 전체를 낙인찍는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하는 논평을 내놨다. 그러면서 "현지 인재를 중시하는 것과 하이구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며 "기업이 근거 없는 이유로 집단 배제를 실행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유명 관변 논객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둥 회장의 발언이 "명백히 선을 넘었다. 유학을 지원하고 귀국을 장려한다"는 국가 정책 기조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中 가전제품 여왕'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
"스파이 위험...해외 출신 절대 채용 안해"
STEM 분야 인재 유치 사활 분위기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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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밍주 거리전기 회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해외 귀국생은 스파이일 가능성이 있어 채용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중국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바이두 캡처 |
“중국 대학을 나온 우리 인재만 양성할 겁니다. '하이구이(海歸·해외 유학파)' 중에는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게 누군지 알 수 없잖아요."
중국의 '가전제품 여왕'으로 불리는 둥밍주 거리전기 회장의 최근 발언이 중국 사회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인재 채용 방침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중국인을 노골적으로 배척한 그의 발언이 담긴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관련 해시태그 조회수가 1억 회를 돌파했다.
해외 출신 인재에 대한 그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 중국 매체 '난펑촹'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의 1만 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재는 모두 중국 대학 출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회사의 문화라고 설명하면서 "하이구이가 꼭 나쁘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하이얼·메이디 등 동종 기업의 해외 유학 인재 비율은 10%를 넘지만, 거리전기 R&D팀의 해외 유학 비율은 0.5% 미만이다.
거리전기 불매 운동까지 거론될 정도로 중국 사회는 비판 여론으로 들끓었다. 신경보는 "낙후한 고용 개념을 드러냈다"며 개인의 간첩 사건을 확대해 귀국자 집단 전체를 낙인찍는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하는 논평을 내놨다. 그러면서 "현지 인재를 중시하는 것과 하이구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며 "기업이 근거 없는 이유로 집단 배제를 실행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유명 관변 논객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둥 회장의 발언이 "명백히 선을 넘었다. 유학을 지원하고 귀국을 장려한다"는 국가 정책 기조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둥 회장의 인식에 공감하는 여론도 표출됐다. 샹리강 중관춘정보소비연맹 대표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유학을 하면 엘리트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며 "가장 우수한 학생들은 중국 내 학교나 주요 인터넷 기업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고, 일반적으로 해외 유학을 간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또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려는 회사의 정책에 간섭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공간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은 미국 스파이가 아닌지 더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등의 적대적인 여론도 형성됐다.
'잠재적 스파이' 의심받는 해외 출신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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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들이 지난해 10월 22일 중국 북동부 랴오닝성 선양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 참석하고 있다. 선양=AFP 연합뉴스 |
'하이구이'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와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다. 과거 하이구이는 선진 해외 문물을 익히고 본국으로 금의환향한 국제적 인재로 환대받았다. 중국에서 '우주 기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첸쉐썬(1911~2009)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을 졸업한 '1세대 하이구이'다. '중국 전기 자동차의 아버지' 완강도 독일 유학파 출신이다.
하지만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 상승과 맞물며 하이구이는 해외 출신 인사를 '잠재적 스파이'로 의심하는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와 맞닥뜨렸다. 둥 회장의 하이구이에 대한 편견은 결국 치열한 미중 패권 경쟁의 부산물인 셈이다.
미중 기술 경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우수한 인재 유치다. 그런 만큼 최근 중국 정부는 하이구이는 물론 전 세계의 인재를 중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의 해외 인재 양성 국가 프로젝트인 '천인계획(2009∼2018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하이구이를 유치하기 위한 범정부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인적자원사회보장부를 포함한 10개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귀국 유학생 서비스 개선에 관한 의견'은 해외 유학생을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는 중요한 역량"으로 규정하며 '유학 지원, 귀국 장려, 왕래 자유, 역할 발휘'라는 방침을 명확히 제시했다. 언론을 감독하는 기구인 국가광파전시총국은 최근 해외 유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채용 공고를 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대학과 연구 기관들이 미국에서 연구 중인 중국인 과학자들을 본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고액 연봉을 포함한 전담 채용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해외 출신 과학자의 귀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소식은 한 달에도 여러 건씩 전해진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암 연구자인 순샤오콩이 미국에서의 30년 연구 생활을 접고 베이징에 정착했다. 영국에서 20년 이상 연구한 저명한 물리학자인 장융하오는 중국과학원 기계연구소 산하 국가과학기술중점연구소에 합류했다. 올 초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내 선도적 과학자 수가 2020년 1만8,805명에서 지난해 3만2,511명으로 늘어났다"며 "최고 인재들이 중국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과시했다.
STEM 인재 환영하지만... 해외파 이중 잣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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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0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에 당시 새롭게 임명된 리창(왼쪽 두 번째부터 걸어나오는 순서대로),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국내 대학 출신이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
하지만 이 같은 '하이구이의 금의환향'은 STEM 분야 일부 석학에 한정된 이야기다. 기술 경쟁 국면에서 인공지능(AI), 재료공학, 수학 등 이공계 인재들을 향한 러브콜은 잇따르지만, 대부분 평범한 해외 대학 졸업생에겐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네티즌이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중국 포털 바이두는 '하이구이'에 대해 "현대 유학생들의 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며 해외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 사이에서 범죄율이 증가했으며, 언어 장벽으로 학업 성취도가 낮다고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올바른 세계관과 신념을 확립하지 못해, 고국에서 소외되고 있다고도 기술돼 있다.
하이구이를 향한 적대적인 '이중 잣대'는 중국 정부가 자초한 바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혹은 지방 고시를 보거나 '쉬안댜오성'이라고 하는 제도를 거쳐야 한다. 쉬안댜오성 제도는 중국공산당 및 정부의 엘리트 간부를 선발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그런데 광둥성, 산둥성 등 대부분의 성에서 해외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들은 이 제도에 지원할 자격을 주지 않는다.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육군, 해군 등에서 해외파도 지원 가능한 장교 모집 공고를 처음 낸 것이 불과 지난 3월의 일이다.
SCMP는 이런 제한 조치의 근간에 이념적, 안보적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상하이 통지대 판슈디 교육평가연구센터 소장은 "구직자의 배경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되지만, 이 제도는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기에 훌륭한 능력 외에도 국가의 방향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같은 정치적 자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하이구이들이 사회주의와는 다른 가치관에 젖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당의 순수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SCMP에 말했다.
설령 공직 사회 '이너서클'에 진입하더라도, 하이구이에게는 제한적인 발언권만이 주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만의 중국경제연구소 왕궈천 연구원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고위 정치 관료 체제는 '토종파'를 명백히 선호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무원 사회에서 하이구이,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은 거의 발언권이 없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민족주의를 강화한 시진핑 집권 3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시 주석은 물론이고 차이치 정치국 상무위원, 리창 국무원 총리 등 중국 최고지도부는 모두 국내 대학을 나온 '토종파'다. 지난 10~11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첫 미중 고위급 대화에서 협상을 주도한 '경제 실세' 허리펑 부총리도 국내파다. 대조적으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협상을 이끈 류허 전 부총리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이다. RFA는 현재 중국의 경제 및 무역 관료 대부분은 국제적 배경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올해만 129만 명 하이구이 들어오는데...
9월 학기제인 중국에선 다음 달이면 신규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쏟아진다. 중국 채용 사이트 자오핀닷컴에서 발표한 '2024년 중국 하이구이 취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온 해외 출신 졸업생의 수는 129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9% 증가했으며, 2018년에 비해 두 배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고국의 땅을 밟기도 전에 하이구이들은 '안보 우려'라는 이유로 취업 문턱마다 스스로의 애국심을 증명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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