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봉춤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인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어쩌다 뒤늦게 폴댄스를 배워보게 되었다. 제니퍼 로페즈 흉내를 내고 싶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고, 이두·삼두박근이 너무 약해서 아무것도 시키지 못하겠다는 PT 선생님의 구박과 등쌀에 욱해서 벌인 도전이었다. 폴댄스가 상체 근력 강화에 그렇게 좋다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다. 거의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의상에 애 둘 있는 아줌마 변호사는 혼비백산하였으나, ‘남성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빈틈없이 붙어 있는 학원 외부를 보고 다소 안심했다. 그래, 목욕탕도 가고 찜질방도 가는데 뭘.
실제 학원에 가 보니, 상체 근력이 좋아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다. 가늘고 긴 봉 하나에 두 팔로 매달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는데, 뽀빠이 단기 양성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다. 동춘서커스단이 떠오른다. 폴댄스는 상당한 근력을 단시간에 쏟아부어야 하는 고강도 운동이기에, 충분한 스트레칭과 예비 운동을 하고 본격 수업에 들어간다. 입문반은 50분 정도 진행하는 1회 수업에서 하나 아니면 두 동작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면 수강생들이 한 명씩 따라 해 보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자, 처음 오신 분! 파이팅 넘치게 도전해 볼까요?”
모두가 쳐다본다. 아, 이 운동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종목이구나. 어떻게든 매달리는 시늉이라도 해 보려 했으나,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도 3초를 세기가 무섭게 철봉에서 떨어지던 무근력자(?)답게 첫날 수업은 처참히 실패했다. 참고로 폴댄스를 잘하고 못하고는 체중이나 체격과 비례하지 않는다. 어느 라이트급은 쭉쭉 미끄러지며 허우적대기만 하고, 어느 헤비급은 한 손으로만 봉을 잡고 요정처럼 화려하게 날아다닌다. 상체 근력뿐 아니라 하체 힘도 중요하다. 팔로만 매달리는 동작도 있지만, 무릎과 허벅지 힘으로 버티면서 회전하는 동작이 많다.
폴댄스 수업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더 있다. 바로 ‘포토타임’이다. 개별 동작 점검이 끝나자 돌연 연습실 불이 꺼지고, 노래방에서 쓰는 것 같은 볼 조명이 현란하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수강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흩어져 부지런히 카메라 세팅을 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이 시간은 그날 배운 동작을 동영상으로 남기는 시간이었다. 연습실에는 삼각대, 셀카봉, 휴대폰 지지대 등 다양한 설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강사는 돌아다니면서 요청하는 수강생의 영상을 찍어주는데, 예쁘게 찍히지 않으면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반복 촬영해 주는 인내심도 발휘했다. 신기한 세계다. 하긴, PT 받을 때도 가끔 동기 부여 차원에서 운동하는 영상을 찍어 주곤 했다. 만인이 만인을 구경하는, 보이는 게 전부인 시대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약 석 달 수련(?) 끝에 나는 그나마 대여섯 바퀴를 가까스로 돌 수 있게 되었지만,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바로 멀미였다! 멀미가 심한 사람은 폴댄스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두 발을 떼고 도는 동작에 성공한 날, 속이 울렁거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역시 안 되겠다고 포기했다. 그래, 도전에 의의를 두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때론 보기 좋게 미끄러져 떨어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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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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