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8 (화)

[기자수첩] ‘중도보수’ 외친 李, 신뢰는 못 챙겼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을 두고 민주당이 안팎으로 시끌시끌하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유튜브 ‘새날’에 출연해 “제가 우클릭을 한다는데, 우클릭 안 했다”며 “우린(민주당은) 사실 중도 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대표의 실용주의에 ‘우클릭’이라는 여권의 비판이 잇따랐는데, 아예 ‘보수’라는 단어까지 입에 올린 셈이다.

그러자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진보의 가치를 존중하며 민주당을 이끌고 지지해온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마음은 어떻겠나”라고 비판했다. 친문(親문재인)계 적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탄핵과 조기 대선을 코앞에 두고 보수냐, 진보냐 이념논쟁이 적절한가”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이 대표의 대표 의제는 ‘기본 사회’다. 그런데 내내 끌고 오던 정책을 “이념·진영이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며 대선을 앞두고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과 관련해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전문가들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사실상 유연하게 생각해보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더니 2주 만에 말을 바꿨다.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 때도 입장이 왔다갔다 했다. 여당에서 민생경제회복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반대한다면 포기할 수 있다고 하더니, 2주 뒤에 발표한 자체 추경안에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이름만 슬쩍 바꿔 넣었다.

게다가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쪽으로 상속세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작년에 민주당은 이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여기에 소득세 개편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초부자들은 감세하는데 월급쟁이들 소득세만 올랐다며 물가와 연동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이쯤되면 이 대표의 발언이 종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어떤 정책을 가지고 뒤집거나 바꿀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발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은 ‘마음이 급한 탓에 실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기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모든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해왔다. 그런데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이끄는 정당의 정체성이 중도 보수라고 규정한 셈이다. 누가 봐도 선거용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진보진영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꾸만 거론하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방산업체 간담회 등에서 진보진영 역대 대통령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우클릭에 대한 비판을 반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기반을 마련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통해 대한민국 성장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도 실용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취지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미지라는 건 자연스럽게 우러나서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끄집어내 주입하려는 듯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최근 당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조기 대선의 ‘ㄷ’자도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대표 본인이 제일 급해 보이는 건 왜 일까. 조기 대선이라는 눈앞의 목적지에 가기 위해 실용주의를 넘어 ‘중도 보수’까지 단숨에 내달린 것으로 비쳐질 뿐이다.

민주당의 5선 중진 이인영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실용이 아니고 퇴행”이라며 이 대표를 비판했다.

좌로 꺾든 우로 꺾든 이 대표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의구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이 대표가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양쪽에서 모두 외면받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송복규 기자(bgsong@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