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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중구 퇴계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오순영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AI미래포럼 공동의장,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김인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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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출현으로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던 AI 패권전쟁이 미국·중국 간 'G2(주요 2개국)' 구도로 급변한 가운데, 한국이 길어야 내년까지로 예상되는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AI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매일경제가 지난 17일 '한국의 AI 현실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매일경제에 AI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개최한 좌담회에서 나온 경고의 메시지다. 좌담회에 참석한 매일경제 필진은 지금이라도 전 국가적인 역량을 투입해 AI 인프라스트럭처와 역량 확보에 사활을 거는 것이 한국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오순영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은 "한국도 앞으로 1~2년 안에 AI 분야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면 글로벌 상위권 그룹에서 완전히 탈락한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AI 경쟁력은 미국·중국 등에 이은 차상위권으로 평가되지만 인프라 부족과 규제 일변도의 꽉 막힌 제도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치에서도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성비 AI'인 딥시크가 던진 충격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중국의 'AI굴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 의장은 "해외 경험 없이 중국에서만 자란 인재들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서 벗어나 글로벌 AI 생태계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딥시크 혁신의 핵심"이라며 "이런 인재들이 이끄는 '제2의 딥시크' 4000곳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세계에 진출하려는 무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수출 제한으로 기술적인 한계가 생긴 것이 오히려 중국이 자체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했다는 것이 딥시크의 아이러니"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AI시장을 놓고 이어진 오픈소스와 폐쇄형 모델 간 전쟁이 딥시크 등장으로 오픈소스 측 승리로 기울었다는 진단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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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은 "딥시크 모델의 성공은 오픈소스 전략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며 "한국처럼 투자 금액에 여유가 없는 나라는 다양한 모델을 활용해 기능을 고도화할 수 있는 오픈소스 전략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한국의 성장을 견인했던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AI 시대에 효과를 발휘하기 힘든 만큼 시대에 맞는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AI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목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자전거 핸들을 잡아 방향을 선택하고 새롭게 길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뒤에서 페달을 밟아 AI 서비스를 양산해 수익을 얻는 데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한국의 새로운 성장 전략의 키워드는 '퍼스트그룹'이다. 윤 교수는 "AI 산업에서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이를 인정하고, 상위권 국가가 이끄는 '퍼스트그룹'의 AI 동맹에 합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AI 동맹에서 한국이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무기로 전문가들이 꼽은 것은 '소버린(sovereign·주권) AI'다. 소버린 AI는 각 나라가 자체적으로 갖춘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만든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를 말한다.
윤 교수는 "각국이 자체 AI를 구축할 때는 AI 동맹에 참여한 국가의 소버린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안보 측면에서 소버린 AI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오 의장은 "소버린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며 "특히 국방, 보안 분야의 경우 자체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보 유출로 국가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각종 규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최근 도입된 AI 기본법과 관련해 "제대로 된 기술이나 모델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만 먼저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AI 기본법 내용을 보면 규제 수준이 너무 제한적이고 디테일하다. AI 사업을 하려는 중견기업과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포기하자는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법 특유의 포지티브 규제(법률상 허용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을 금지) 시스템이 똑같이 적용된다면 AI 에이전트 등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적어도 AI 관련 분야에서는 금지한 것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한계도 지적됐다. 오 의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한국의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나오는 제품의 퀄리티와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졌다"며 "너무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근무시간에 제한 없이 일하는 중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개발한 AI 기술을 산업계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AI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 교수는 "글로벌 대학 중 AI 특허 출원 숫자로 순위를 매기면 서울대와 카이스트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정작 실제로 해당 기술을 이전한 실적은 특허 대비 5%도 안 된다"며 "생산성 면에서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성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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