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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 (화)

"이대로 살 수 없다" 땡볕에 조선소 점거했던 하청노동자, 집행유예·벌금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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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51일간 이어진 대우조선 파업
조선업 불황 탓 30% 깎였던 임금 회복 요구
법원 "공익 목적 행위 고려" 실형 선고 안 해
노동자들 실형 면했지만 470억 손배소 계속
"명태균이 尹에 파업 강경 진압 조언" 의혹도
한국일보

지난 2022년 7월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1독(건조장)에서 유최안 당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가로 세로 높이 약 1m 철제 구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여 년 경력 고숙련 노동자인 그가 그해 1월 받은 월급은 세전 235만 원, 세후 207만 원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살짝 많은 1만350원 수준이었다. 거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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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2022년 여름 열악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선박 건조장(독) '점거농성'을 벌였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형사 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실형 선고는 없었다. 법원은 "공익 목적의 행위인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 김진오 판사는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2022년 6월 2일부터 7월 22일까지 51일간 점거농성 등 파업을 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재판에 넘겨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등 22명에게 1심 선고를 내렸다.

김형수 지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벌금 100만 원, 유최안 당시 부지회장 등 10명에게는 징역 2년~8개월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나머지 11명에는 벌금 500만~100만 원이 선고됐다. 당시 이들은 2015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불황으로 30%가량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단적인 예로 20여 년 경력 용접 기술자였던 유 부지회장 시급은 1만35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한국일보

2022년 여름 51일간 파업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관계자 등이 19일 경남 통영시 창원지법 통영지청 앞에서 선고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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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집회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업무방해, 공동 감금 등을 한 행위와 이에 따른 피해 정도를 감안하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들은) 개인적 이익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경제적인 질 향상을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 사건과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는 "51일 파업 이후 형사 재판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 7개월이 걸렸고 그간 조선업은 초호황을 맞이해 한화오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2,379억 원을 기록했다"며 "그러나 하청노동자는 여전히 저임금에 고통받고, 중대재해로 목숨을 위협받고, 원청 한화오션은 여전히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을 거부해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99일째 파업 중"이라고 밝혔다. 하청노조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원청 한화오션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농성투쟁을 했고, 올해 1월부터는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농성 중이다.

'1인당 95억' 손배소···국회 중재는 진척 없어

한국일보

정혜경(가운데) 진보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명태균-대우조선해양 파업 불법개입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정 의원 등 야당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파업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파업 현장을 둘러본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강경 진압' 등 파업 대응 조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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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재판과 별개로 회사가 하청노조 집행부 5명을 상대로 제기한 '47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1인당 95억 원꼴이다. 사측은 손해배상 청구액을 547억 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노동 탄압'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제기되자, 한화오션 측은 "국회에서 중재 노력을 하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재 한화오션 원하청 노조 등이 참여하는 '안전 다자 협의체'는 가동되고 있지만, 민사 손배 소송 관련 협의는 진척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윤석열·김건희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명태균씨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파업 현장을 둘러보며, 윤 대통령에게 '강경 진압' 등의 조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날 금속노조는 성명서에서 "하청노동자 목소리는 듣지 않고 탄압으로 일관한 원청은 명태균에게 거짓·과장 보고를 하고, 윤석열은 명태균 말에 따라 공권력 투입을 검토했다"고 주장하며 "명태균 파업 개입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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