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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월)

러 ‘판정승’…대러제재 해제 등 푸틴 구상대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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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종전 고위급협상팀 설치, 재건 공조”

美, 대러 제재 완화 시사…유럽 강력 반발

NYT “머리가 빙글 도는 미·러 관계 리셋”

이코노미스트 “푸틴 ‘트럼프 조종가능’ 여겨”

헤럴드경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화상 회의를 통해 내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한 가운데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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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인사들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우크라이나 종전 회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존에 요구한 구상대로 진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측이 유럽연합(EU)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양보’라고 언급하면서 대러제재 완화를 시사한데 따른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전 요구에 응하면서 실속을 챙기고 있다고 짚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미·러 관계의 리셋”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첫 미·러 장관급 대면 회담이었던 이날 미국 측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 측에선 외교 베테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 등이 자리했다.

▶‘미러관계 리셋’…석유, 에너지, 우주탐사까지 경제협력 재개=약 4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우크라이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고위급 협상팀을 각자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악화한 미러 관계 개선을 위해 미·러간 협의 메커니즘을 만들기로 했으며,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공조 의지도 확인했다.

러시아는 미국으로부터 각국 주재 대사관 운영 정상화, 주재 대사의 신속한 임명, 외교 공관활동 정상화를 위한 차관급 협의 등을 얻어냈다. 특히 서방의 대러 제재 완화 문제도 거론돼 실익을 챙겼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후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선 모든 당사자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유럽연합(EU)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회의와 관련해 “호혜적인 경제 협력 발전을 막는 인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강한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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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이후 루비오 장관 등 미국 측 인사들은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대한 언급 대신 이날 회담을 성사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을 피력하는데 열중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NYT는 이날 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기보단 러시아와 협력해 전쟁을 끝내기를 열망했다”며 “이는 푸틴 대통령의 많은 요구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유럽 동맹국들의 우려를 저버릴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줬다”고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련의 모호한 협상에 동의했으며, 이는 푸틴에겐 적절한 대화였다”며 “푸틴은 조급한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manipulable)’할 수 있는 상대라고 믿고 있다”고 표현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3년간 전쟁을 끌어오며 사상자, 군사적 소모, 자국 경제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유럽의 대러 제재를 완화하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막는 것은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회복하는 시간을 벌어줬을 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을 유지시킨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양국은 석유, 에너지, 우주탐사 등을 포함한 경제 협력을 재개하기 위한 대화도 시작했다. 러시아는 이날 천연 자원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석유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재개함으로써 수천억달러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는 이날 “소통과 신뢰, 성공을 재건하기 위해 미국과의 경제 협력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회담 시작 전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미국의 석유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업을 해왔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러시아 논평가들은 이날 회담이 과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에 부과한 엄격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또 유럽 평화유지군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의 평화 유지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평화유지군을 파병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 평화유지군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토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는 종전 이후 시나리오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군 파병 가능성에 선을 그은 이상 유럽 국가들이 자국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해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사저가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에 유럽의) 군대를 주둔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 파병에 선을 그었다.

▶유럽 강력 반발…19일 2차 비공개 회의=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직접 접촉으로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자 유럽연합(EU)과 영국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EU는 이날 미국이 러시아와 회담한 후 ‘양보’를 언급하며 EU의 제재를 지목한 것에 발끈했다. 이날 미·러 회담으로 이른바 ‘유럽 패싱’이 심화하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추가 조처를 준비 중”이라며 16차 제재를 예고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날 오후 공개된 EU 전문매체 유락티브와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강력한 카드를 내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제재 완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지난 17일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에 대한 비공식 회의를 개최했던 프랑스는 오는 19일 2차 회의를 열기로 했다. 1차 때 참석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과 나토 동맹국인 캐나다도 초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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