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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머스크에 가려진 밴스?…그가 서둘지 않는 이유[트럼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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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행정부의 ‘공식 2인자’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트럼프-머스크 브로맨스’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머스크와 첫 공동 인터뷰에 나선다. 집권 2기 출범 후 아직 밴스 부통령과 공동 인터뷰에 나선 적이 없는데, 머스크와 먼저 폭스뉴스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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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머스크,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의 모습(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환하게 웃고 있다. 버틀러=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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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스 부통령이 머스크의 그림자에 가려졌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고 둘 간의 견제설이나 갈등설이 제기되는 상황도 아니다. 밴스 부통령은 오히려 각종 논란과 관련해 머스크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트럼프-밴스-머스크’ 삼각관계는 어떤 역학으로 유지되는 것인지 살펴봤다.

● 밴스와 트럼프의 첫 만남

밴스 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으로, 오하이오주에서 흙수저로 자란 자신의 성장환경을 기록한 책 ‘힐빌리의 노래’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망가진 사회를 고칠 역량이 없는데 정치적 쾌감만 주는 문화적 헤로인(마약)”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2021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자택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돌아온 지 한달 됐을 시점이었다.

당시 밴스 부통령은 정계 입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향 오하이오주의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사하기 위해 마러라고에 직접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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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원 후보 시절 밴스 부통령의 15초 TV 광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지지했다’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사진 출처 밴스 부통령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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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놓아준 사람은 피터 틸 인공지능(AI) 방산기업 팔란티어의 공동창업자였다. 틸은 머스크의 25년 지기 최측근이자 실리콘밸리 보수 진영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는 밴스 부통령의 ‘사회적 아버지’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와 인연이 깊다. 둘은 밴스 부통령이 예일대 재학생일 때 처음 만났다. 이후 틸은 첫 직장, 첫 출간, 첫 선거, 그리고 첫 대선까지 밴스 부통령의 인생을 뒤바꾼 분기점마다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백악관 킹메이커’가 된 틸의 40년 막후 정치 여정은 트럼피디아 8화에서 살펴봤다.

둘의 첫 만남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당시 회동에 참석한 인물들의 전언(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 위에는 두툼한 종이 뭉치가 올려져 있었다. 밴스 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정리해 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운을 뗐다.

트럼프:
나에 대해 몹쓸 말을 했더군.

밴스:
죄송합니다. 미디어의 거짓말에 속았습니다.
특히 제가 그래서는 안됐습니다.

트럼프:
‘힐빌리의 노래’를 쓴 사람이 그러면 안됐지.


트럼프는 마음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둘은 정치의 어려움에 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날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끝났다.

트럼프: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날 보러 오는 자들은 원하는 게 있던데.
공개 지지를 해달라고 할 건가?

밴스:
저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트럼프:
내 지지를 원하지 않아?

밴스:
당연히 원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제 힘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언론이 뭐라 하든 절대로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
그래.
J D, 건강 챙기고. 종종 연락하세.


이날 회동을 기점으로 밴스 부통령은 친트럼프로 돌아섰다. 충성을 맹세하며 180도 변신한 것이다. 이듬해 중간선거(상·하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격)에서 밴스 부통령은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지지 없이 당선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2년 11월 선거를 앞두고 그해 4월 공식 지지를 해줬다.)

정치적 재기를 노리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밴스 부통령은 든든한 우군이 됐다.

밴스 부통령의 변신은 미 정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줬다. 이전까지 그는 진보 진영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소외된 빈곤층 노동자를 대변할 이상적인 보수 샛별로 여겨진 것. 시사지 애틀랜틱은 그를 두고 “기회주의자라는 호칭도 과분하다. 밴스는 경멸스럽고 부끄러운 광대가 됐다”고 비판했다.

● 밴스를 밀어주는 자들

밴스 부통령은 매우 영특하고 민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화 한번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고, 이후 폭스뉴스에 자주 출연하며 그의 눈에 들었다. 폭스뉴스 애청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 부통령을 보며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밴스 부통령을 두고 “아름다운 파란 눈을 가진, 잘생기고 똑똑한 청년이다. 방송도 잘하고, 토론도 잘한다”며 주변인에게 칭찬했다고 한다.

밴스 부통령은 쭉쭉 치고 나갔다. 부통령 후보군에 들었다. 지난해 5월 마러라고에서 ‘부통령 오디션’이 연상되는 행사를 개최한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 부통령을 두고 진국이라는 취지로 극찬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부통령 후보군 7명을 무대에 한 줄로 세워두고 직접 소개했는데 밴스 부통령에 대해 “처음에는 나를 재앙이라고 했던 사람이지만, 밴스는 알면 알수록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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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 참여한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왼쪽부터). 사진 출처 밴스 부통령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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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통령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치지 않는다. 선택권은 전적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있다.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러닝메이트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부통령 후보는 대통령 후보와 상호보완적이면서도 대통령 후보의 그늘에 있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밴스 부통령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당시 상원의원),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당시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엘리스 스테파닉 주유엔대사 후보자(당시 하원의원), 팀 스콧 상원의원, 바이런 도널즈 하원의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와 경쟁했다.

밴스 부통령은 지난해 7월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모금행사가 흥행하자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행사를 개최한 것은 틸과 머스크와 절친한 사이이자 이번 행정부에서 ‘인공지능(AI)·가상화폐 차르’ 역할을 맡은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 데이비드 색스였다. 밴스 부통령이 색스를 반년간 설득해 성사한 행사였다.

밴스 부통령은 틸과 머스크, 트럼프 주니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부통령 후보 자리를 손에 넣었다고 NYT,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NBC방송 등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틸을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틸은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도 막역한 사이다.

● 밴스의 시간은 온다?

“요즘 밴스는 어딨는가? 그가 있을 자리에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니아말리카 핸더슨 논설위원은 지난해 12월 이런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머스크의 그늘이 밴스가 있을 자리”라며 “머스크만 행복하다면야 밴스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적었다. 밴스 부통령이 대선 주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머스크가 꼭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세계 2위 부자 머스크와 그의 실리콘밸리 이너서클의 지원이 있어야 차기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농담을 통해 3선 가능성의 운을 띄우고 있다. 그는 “밴스는 2028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아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하며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트럼프 세계의 실세들은 전부 밴스 부통령을 미래 대선 주자로 굳건히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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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트럼프 주니어(왼쪽 붉은색 넥타이), 엄지척을 하고 있는 머스크(정중앙), 밴스 부통령(맨 오른쪽).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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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마가 풍운아’들은 대통령직에 도전할 생각 없어 보인다. 머스크는 미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미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될 수 없고, 그의 인생 목표 또한 ‘화성 식민지 건설’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틸 역시 독일에서 태어났고, 틸은 자신이 “정치를 본업으로 삼으면 돌아버릴 사람”이라며 이번 행정부에 입각하지도 않았다.

*화성을 향한 머스크의 열망은 트럼피디아 9화에서 다뤘다.

트럼프 주니어도 차기 등판론에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행정부 입각이나 의회 입성을 준비하는 대신 각종 트럼프 대통령 관련 사업과 팟캐스트 활동을 벌이며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달 22일 라틴계 정치단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무대에 올랐다. 사회자가 그에게 스페인 미남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닮았다고 칭찬하자 “그렇게 봐주시다니 감사하다”며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이어 사회자가 “2028년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하자 트럼프 주니어는 크게 웃으며 “세상에나. 노, 노, 노. 그런 말씀하시면 곤란해요”라며 말을 돌렸다.

트럼프 주니어는 자신이 고른 인물을 부통령으로 만든 막후 실세다. 지난해 7월 아버지가 밴스 부통령을 발탁한 것에 대해 “훌륭한(incredible) 선택”이라고 옹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밴스 부통령의 고향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4년은 트럼프 시대, 그 뒤 8년은 밴스 시대가 될 것입니다.”

10화 요약: 밴스 부통령은 틸과 머스크 등 실리콘밸리 보수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정치인이다. 마가 후계자로 꼽히는 그는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해 자신의 정치 후원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1화 예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삼권분립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입법부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장악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남은 것은 사법부. 예일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밴스 부통령이 어떤 판을 짜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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