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249명이 213억원 챙겨
문항 판매 손 못 뗀 교감 등 백태
감사원 "평가원도 문항 부실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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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한 재작년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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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A씨는 아내 명의로 사교육업체에 수학능력시험 출제 형태의 문항을 파는 '문항 공급업체'를 운영했다. 자신을 포함한 현직 교사 36명이 문제를 만들고 아내 명의 업체를 통해 학원이나 강사 등에 문제를 팔아 거둔 매출액은 2019년부터 약 3년간 19억 원에 달했다. 이 중 3억 원은 A씨 주머니로 꽂혔고, 1억1,000만 원은 아내 회사의 영업이익으로 잡혔다. 교사로서 받는 월급 외에 연 1억 원 이상의 가외수입을 챙긴 것이다.
서울의 대표 '학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목동 인근 고등학교 교사 B씨는 2019년 1월 교감으로 승진하고도 사교육업체와의 '문항 거래'를 끊지 못했다. 그는 2005년부터 약 15년 가까이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에 참여한 이력을 활용해 2018년부터 수능 모의고사 문항을 학원 등에 판매했다. B씨는 또 대학 선후배 관계인 다른 학교 교사 두 명과 '문항제작팀'까지 이뤄 문항을 제작·판매했다. 교감으로 승진한 후에도 문항거래를 계속해 2023년 6월까지 B씨가 올린 수익은 총 1억여 원에 달했다.
교육과정에는 없지만, 수능엔 나올 가능성이 큰 문제를 암암리에 사고파는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의 실체가 18일 감사원 감사 결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점검 결과 249명의 교원이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제작·판매해 거둔 수익은 총 21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감사원은 또 초고난도 문제인 ‘킬러 문항’이 현직 교사조차 풀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것도 확인했다. 정답률이 2~3%대여서 변별력 확보라는 당초 출제 목적과는 다르게 찍는 것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현직 교사들도 다 틀리는 문제도 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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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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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감사원 실지감사는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약자인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불공정한 행태"라며 킬러 문항 출제를 비롯한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한 직후인 2023년 9월부터 약 3개월간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주요 점검 대상은 2018~22년까지 5년간 학원이나 강사, 출판사 등 사교육업체로부터 5,000만 원 이상 고액을 받은 교원으로, 여기엔 수능과 모의고사를 출제하고 EBS 수능연계교재 집필 참여 경력이 있는 이들이 대거 포함됐다.
학원 강사 C씨는 "EBS 집필 경력이 있다는 건 수능에 가까운 형태의 양질의 문항을 제작할 능력이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EBS 집필 경력이 있는 교원에 문항 제작을 의뢰한 배경을 전했다. 실제 고등학교 교사 D씨는 2016년 EBS 교재의 집필진 명단을 보고 연락한 강사 E씨로부터 화학 모의고사 문항 제작을 의뢰받고 문항 거래 계약을 맺었다. E씨는 D씨가 판매한 문항을 모의고사 제작에 활용하면서 EBS 집필진 등과 공동 제작한 수능과 가장 유사한 수준의 모의고사라고 홍보했다. D씨는 모의고사 문항을 꾸준히 제작·판매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8개 업체로부터 총 6억1,000만 원을 챙겼다.
사교육 카르텔은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대형 사교육업체가 집중된 지역에서 주로 작동되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 사교육업체 문항거래 규모만 198억8,000만 원(93.4%)으로, 특히 서울(75.4%)의 경우 대치동, 목동 등 학원가와 인접한 학교 교원들의 문항거래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감사에서 이들 학원이 '경쟁력'이라고 홍보해 온 수능 킬러 문항의 실체도 일부 드러났다. 감사원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출제 과정에서 현직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 전원이 오답을 낸 수학 문제가 출제된 점을 확인한 것이다. 2022년 실시된 '2023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출제 과정에서 현직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 전원이 오답을 내고 예상 평균 정답률이 2.85%에 불과했음에도 그대로 출제된 '수학 22번' 문항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은 교육부에 비위가 큰 29명에 대해 징계 등을 요구하고, 나머지 220명에 대해서는 적정 조치하도록 통보했다.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 거래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평가원의 검증 부실과 교육부의 지도·감독 소홀도 있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능 출제과정에서 사설 모의고사와 중복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이의신청을 부당하게 처리한 평가원에 관련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수능 출제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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