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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일)

[투데이 窓]국민체감보다 더 심각한 의료시스템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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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편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벚꽃이 기대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벚나무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내천을 따라 천천히 20분을 걸으면서 벚나무 하나하나를 보면 성한 나무가 하나도 없다.

봄이면 모두 꽃을 이렇게 잘 피우는데 건강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벚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보면 대부분 썩어간다. 가로수로 심은 나무는 도심에서 인간에게 수없이 많은 이로움을 제공하지만 정작 나무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악전고투한다. 나무의 뿌리도 생명체이기에 숨을 쉬어야 하지만 도로포장과 사람에 의해 땅이 다져져 숨이 막혀 한다. 그리고 보행에 피해를 줄까 해서 수시로 가지를 잘라주는데 잘린 단면으로 곰팡이가 바로 침투해 나무의 목질을 분해하면 썩기 시작한다. 특히 벚나무는 저장된 에너지의 대부분을 꽃을 피우는데 쓰기 때문에 상처 난 곳의 감염에 매우 취약하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썩어들어가 죽는다. 나무 한 그루에서 한쪽은 잎이 나오고 꽃도 피지만 한편으론 감염된 가지나 줄기가 썩어들어가는 모순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인간에게 조그마한 암이 발생해도 처음엔 사람이 죽지도 않을뿐더러 살아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암이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남으로써 사람은 결국 죽는데 상처받은 나무의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전공의와 전임의가 병원을 떠나고 학생이 학교를 떠난 지 만 1년이 됐다. 일부 병동을 닫고 희망퇴직을 받는 등 병원은 자구책을 마련했고 제한적이지만 진료를 보고 월급도 나온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병원의 파행적 운영과 의료시스템 붕괴는 점점 잊히는 듯하다. 어찌됐든 응급실도 돌아가고 암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 있고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도 받을 수 있으니 당장의 불편은 없고 평온해보일 수도 있다. 환자들을 위해선 다행이고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병원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수들은 당직을 서면 밤새 20건에서 30건의 전화를 받고 환자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수술이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하고 외래진료가 있으면 진료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우선 가능한지 의심스럽지만 그렇게 해온 지 이미 1년이 됐다. 이렇게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정상적인 역할을 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 병원은 부분적으로 돌아가는 진료행위 외엔 모두 파행이거나 중단됐다.

교수들은 동료교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외 학회도 잘 가지 못하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원내 의학세미나, 콘퍼런스가 중단됐다. 진료시 의무기록도 간신히 서식만 채울 정도지 결코 잘된 의무기록이라고 보기 어렵고 진단서, 진료소견서 등 진료 외 업무처리도 부담이 많아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진료는 가능할지라도 의학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좋은 병원과 의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의료종사자들은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이런 성과는 단순히 의사의 의료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병원은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빠르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병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책결정으로 잘 만들어진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공의 파업의 대책으로 외국에서 데려오거나 군의관을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의 전산시스템을 이해하고 각 병원의 진료특성을 교육받아 이해하지 않는 한 단순한 의사면허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환자를 위한 진료공백을 메울 수도 없다.

지금 병원은 성내천의 벚나무와 다를 바 없다. 살기 위한 조건이 험악해 간신히 버티지만 한편으로 썩어가는 가지처럼 병원의 기능은 멈추고 퇴화한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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