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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목)

50주년 맞은 美 SNL… 장수 비결은 뼈 때리는 ‘정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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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894명 다녀간 NBC 인기쇼

조선일보

14일 뉴욕 나스닥 건물 외벽에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관련 광고가 게재돼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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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송된 미국 NBC의 예능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의 한 장면. 진행자도 흑인, 참가자도 흑인인 퀴즈 쇼 ‘블랙 제퍼디’ 녹화장에 백인 남성이 들어섰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 받은 배우 톰 행크스(69)였다. 미국 국조 흰머리수리가 그려진 흰 셔츠에 청색 셔츠를 헐렁하게 걸치고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구호)’이라고 찍힌 빨간색 모자를 썼다. 억센 남부 억양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교회에 나가면, 이런 엉망진창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흑인 진행자가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기겁하며 물러나기도 했다. 1964년부터 방송 중인 장수 퀴즈 쇼 ‘제퍼디’의 패러디 코너를 통해 행크스가 트럼프 지지자로 분해 촌스럽고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모습으로 연기한 것이다. 이 코너를 포함해 이날 SNL은 방영 50주년 특집으로 세 시간 동안 전파를 탔다.

1975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밤 방송된 SNL은 인기 스타들이 출연해 기존 출연진과 호흡을 맞춰 생방송으로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고, 거침없는 정치·사회 풍자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1년 판권 수입을 통해 ‘SNL코리아’가 제작돼 국내에서도 친숙한 편이다. 50주년 특집에는 톰 행크스를 비롯해 애덤 샌들러, 스티브 마틴, 스칼릿 조핸슨, 라이언 레이놀즈, 릴 웨인 등 역대 출연진이 나왔고, 뉴욕 녹화 스튜디오 앞에도 팬들이 몰려들었다.

SNL이 반세기 동안 사랑받던 최고의 동력으로는 성역을 가리지 않는 거침없는 정치 풍자가 꼽힌다. 백악관도 성역이 아니었다. 제작진은 재임 초기 막강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트럼프의 열성 지지층을 풍자 대상으로 삼았는데, 트럼프 본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의 예고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SNL은 트럼프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때도 트럼프를 여러 차례 패러디했는데 전담하다시피 한 배우는 앨릭 볼드윈(67)이었다. 얼핏 보면 구분이 쉽지 않을 만큼 흡사한 외모·풍채에 능청스러운 연기로 역할을 잘 소화해 “현직 대통령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였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경우 부통령·상원의원 시절부터 아홉 명의 배우가 연기했는데, 특히 트럼프와 맞붙어 승리했던 2020년 대선 때는 코미디 연기의 대가 짐 캐리(63)가 바이든 역을 맡아 트럼프를 연기한 볼드윈과 선거전 패러디 연기로 호흡을 맞췄다. 트럼프는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1980년대 후반부터 소재로 등장했다. 정치 입문 전인 2004년과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였던 2015년에는 직접 출연했다. 당시 민주당 예비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으로 분장한 배우 래리 데이비드가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외치자 트럼프가 “당신일 줄 알았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대선 주자들은 SNL을 친숙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11월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막판 유세전 중 짬을 내 뉴욕에 들러 SNL에 등장해 자신을 연기한 배우 마야 루돌프와 함께 화면에 등장했다. 2016년 때도 배우 케이트 매키넌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레리 데이비드가 샌더스를 각각 패러디했고, 힐러리와 샌더스가 직접 출연했다.

프로그램의 50년 역사를 실감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됐다.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 멤버로 친숙한 폴 사이먼(83)과 신예 팝스타 사브리나 카펜터(25)가 듀엣 공연으로 막을 열었다. 사이먼은 “1976년 SNL에서 조지 해리슨(2001년 작고한 비틀스 멤버)과 함께 노래했다”고 하자 카펜터는 “그땐 나도, 우리 부모도 세상에 없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올스타전 같았던 50주년 기념 방송은 다양한 세대의 SNL 출연진이 서로 어울리고 농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반가운 기회였다”고 했다.

프로그램 작가이자 단골 출연자였던 존 멀레이니의 발언도 화제가 됐다. 그는 “50년이란 시간 동안 894명이 SNL에 출연했다”며 “그들 중 두 명만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고 했다. 멀레이니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 사망한 전직 미식축구 선수 겸 방송인 O J 심슨과 2023년 사망한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일 것으로 추측했다. 전성기 시절 SNL에 출연한 두 사람은 배우자 또는 전처(前妻)를 살해 혐의로 기소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형사 재판에서는 무죄로 평결이 됐지만, 유족이 제기한 민사 재판에서는 혐의가 인정돼 배상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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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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