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태준 시인 |
지난달에 한 시상식에 다녀왔다. 막 등단한 시인과 소설가에게 시상을 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아주 오랜만에 가 본 자리였다. 예전의 시상식처럼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문인, 수상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했다. 대개 이러한 시상식에는 심사 경위와 시상, 축사, 수상자의 말이 차례로 이어진다. 나는 새로운 신예를 뽑는 심사위원을 맡았다는 이유로 축사를 하게 되었다. 등단한 이들에게 내가 직접 축사를 한 적은 지금껏 없었다. 나보다 연장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며 살아온 세월이 더 오래된, 또 문단에서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이 심사위원 가운데에는 대체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축사를 하게 되었다.
■
축사 잊지말라는 축사에 공감
등단때 받은 축하 기록해 둘 걸…
신중한 격려, 어려움 견디는 힘
![]() |
김지윤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는 축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축하드립니다. 하루의 시간, 네 계절, 여러 해 동안의 고심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작은 시내를 이룬 것입니다. 더 큰 물줄기를 이루며 멀리 가시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견뎌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여러분의 앞에는 불면의 밤과 이 세계의 질문과 원고 청탁서가 놓여지겠지요. 여러분 앞에 놓인 이것들을 해결해야 할 텐데, 즐겁게 즐기면서 해결하셨으면 합니다. 아침저녁과 네 계절과 여러 해에 걸쳐서 말이지요. 좋은 작품은 견뎌온 여러분을 가슴 벅차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좋은 문장은 오늘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안겨줄 것이고, 이 기쁨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환희가 아닙니다. 이번에 당선한 분의 시만 보더라도 여러분은 우리 문단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거듭 축하를 드립니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나의 축사 후에 한 소설가의 축사가 이어졌는데, 그가 말한 짧은 문장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이러했다. “여러분이 등단 소식을 받은 날과 오늘 시상식에서 한 소감의 말,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축사를 꼭 기억하고 기록해두세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축사의 말이었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나는 견뎌야 한다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했는데, 이 소설가는 견뎌내며 살아가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건넨 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등단 통지를 받은 날의 마음과 시상식에서 밝힌 소회,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축하와 조언의 말은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막 등단하던 때를 전후해서 어떤 말을 들었고 어떤 마음을 가졌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어떤 구체적인 말도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등단한 때가 1994년이라 벌써 서른 해가 지났으니 그럴 수 있다고 애써 이유를 대는 것도 궁색할 뿐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선후배 시인들이 혹은 나를 시인의 삶으로 이끌어준 심사위원들이 내게 한 조언을 기록해두었더라면, 혹은 그때에 독백처럼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말이나 다짐을 마치 일기장에 중요한 하루의 일을 남기듯 기록해두었더라면 훨씬 견뎌내는 일에 도움을 받았을 텐데 말이다.
물론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내게 들려준 말이나 비평의 글, 그리고 편지를 통해 전해온 격려와 조언의 문장을 잘 챙겨서 수시로 들여다보곤 했다. 가령 한 선생님께서 내 신작 시집을 읽고 느낀 감상을 먹그림으로 그려서 보내온 것을 가끔 펼쳐보고 있고, 2008년 8월 4일에 내 시집을 일어로 번역해 일본에서 출간한 이와사키 리요코 님이 보내온 자필의 편지를 더러 읽어보고 있고, 2022년 8월 중순 한 시상식에서의 심사평과 내가 육필로 쓴 수상 소감문을 흰 봉투에 넣어 보관하면서 시 쓰는 열의가 식으려 할 때마다 꺼내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격려와 조언의 문장은 불면의 밤을 감내하면서 시를 짓도록 기운을 높여 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는 말이나 충고를 듣는다. 그 말은 안타깝게도 심중(心中)에 남아 있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흩어지고,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두터운 애정이 바탕에 있고, 또 거듭거듭 생각해서 말을 꺼내는 신중함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서 졸업식 축사를 위해 종이 위에 아주 조심스럽게 글을 쓰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에는 가장 정성스럽고 지극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의 시간에, 그때에,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 혹은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 내가 들었던 말을 더 오래 기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