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역주행 중인
광주시장의 ‘화려한’ 전력
말로만 민주주의
행태는 反민주
민주화 철옹성 뒤의
586 운동권 민낯 드러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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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렬 대통령 탄핵반대집회./김영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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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광주 금남로에서 벌어진 탄핵 반대·찬성 집회는 ‘정치 파산’ 사태로 광장의 정치가 그 자리를 메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보수 기독교 단체가 부산, 대구에 이어 광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열겠다고 했을 때 강기정 광주시장은 “5·18 민주 광장에서 극우 집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광장 사용을 불허한다고 했다. 한 민주당 의원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장소”라며 광주 쓰레기 매립장 주소를 띄우는 등 거친 언사가 쏟아졌다. 큰 마찰 없이 집회가 끝났지만 좌파의 주력 상품이던 장외 정치에서 탄핵 반대 쪽에 사람이 더 모인 게 확인되자 강 시장은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에서 ‘피해자 프레임’을 가동했다. “어마어마한 세력들이 몰렸다. 마치 1980년 계엄군이 광주로 진입해 들어오는 느낌을 광주 시민들이 다 느꼈다.” “광주 밖에서 버스로 동원돼 온 사람들의 눈빛은 ‘사이비 종교’같이 광주를 죽이러 온 것 같았다.” 이 일련의 발언 때문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까지 새삼 강 시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과거로 시선을 보냈다.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4대강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 및 보좌진 사이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국회의원끼리 몸싸움이 적잖게 일어나고 쇠사슬, 해머, 전기톱까지 동원되던 ‘동물 국회’ 시절이었다. ‘김성회 의원과 강기정 의원 난투극의 진실’이라는 14년 전 동영상에서 네티즌들이 새삼 주목하는 것은 격한 몸싸움 와중에 여당 김 의원에게 얻어맞고는 분을 참지 못한 야당 강 의원이 옆에 있던 국회 경위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었다.
1964년 전남 고흥 출생의 386 운동권 출신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각각 ‘징역 7년, 자격정지 5년’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정도야 학생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386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특이할 것 없는 전력이지만 강 시장은 정치인이 되어서도 전과가 2건 있다. 앞서 국회 난투극에서 경위를 폭행한 일 때문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것을 포함해 크고 작은 폭행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3선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광주광역시장까지 화려한 정치 경력을 이어왔다.
그런데 탄핵 반대 집회에 격하게 반응하며 열변을 토하는 강 시장의 동영상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처럼 간결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 있다. “시장님, (약자 위한다는 좌파가) 국회 경위는 왜 때리신 거죠?” “이번에 광주 갔는데 광역시 맞나요. 너무 낙후되어 있던데 이런 거 할 시간에 광주 발전에 힘쓰시라.” “범죄자도 시장 하는데 대한민국 땅에서 왜 집회도 못 하게 하느냐.” “이런 분이 민주주의를 말한다니.” “아이들에게 중국 노래(정율성 음악제) 시키신 거 잘 봤어요.”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80일 가까이 이어지면서 “20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뤘다”고 칭송받던 한국이 민주주의 밑천을 바닥까지 드러내고 있다. 밀물 때는 가려 있었는데 썰물 되니 누가 수영복 안 입었는지도 도처에서 드러난다. 중립 지대에 서 있어야 할 공수처·법원·헌재의 과잉 정치화, 헌법 수호자로 존경받아야 할 헌법재판관들의 몰상식 근무 행태와 투기 탐욕, ‘간첩은 불구속 수사, 대통령은 구속 수사’하는 놀라운 법 집행, 오염된 증언이 뒤섞인 계엄 관련자들의 ‘내란죄 프레임’에 더해, 민주당의 카톡 계엄, 반대 집회 불허 같은 반민주적 민주화 세대의 민낯까지 별별 것이 다 튀어나온다.
대통령 헌재 심판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 나겠지만 ‘정치 도시’ 광주 금남로의 이질적 대치와 상반된 목소리의 충돌은 그저 누가 이기고 지느냐 하는 ‘O·X’ 승부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등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 붕괴는 위험하면서도 미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며 그래서 시민 대부분은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새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계엄·탄핵의 혼란기에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정보를 흡수하고 의견을 형성하며 민주주의를 ‘주관식 문제’로 고민하고 학습 중이다. 단단한 바위처럼 오랫동안 한목소리를 내온 동질성의 정치 도시 광주에서도 호남 출신 보수 논객이 연단에 올라 “호남도 더 늦기 전에 변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기적이고, 이런 기적을 만든 원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일 협력인데 호남의 선택은 늘 반대”라고도 했다. 바위가 하루아침에 부서지지는 않겠지만, 광주 금남로에서 들린 불협화음이 바위를 쪼개는 낙수 한 방울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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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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