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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윤석열 즉각 파면, 국민의힘 해체, 대구시민시국대회’가 열리던 지난해 12월7일, 대구 동성로 골목 한쪽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 서 있던 응원봉 연대를 만난 적이 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응원봉을 든 평범한 시민들은 집회의 주요 구성원이 됐다. 김규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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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전국팀 기자
“다음부터 대구만 계엄해야겠어요.”
두 눈을 의심했다. 지난 8일 동대구역 광장에 경찰 추산 5만2천여명이 모였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사진과 함께 올라온 엑스(X·옛 트위터)의 게시글이다. 집회 하루 뒤 올라온 이 글은 현재(18일) 기준 조회수 100만을 넘었다. 이 글에서 파생된 게시글에는 “대구만 계엄해서 계엄이 뭔지 확실히 느끼게 해주자”며 동조하거나, “여기 사는 사람이 제일 미치겠다. 싸잡아서 지역을 혐오하지 말라”며 비판하는 주장이 엇갈렸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참석한 동대구역 집회는 실제로 역대급이었다. 대구교통공사는 이날 대구도시철도 1호선 동대구역을 이용한 승객이 모두 8만7천여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대구도시철도 단일 역 기준으로 역대 최다 수송 기록이다. 동대구역 광장을 둘러싸고 전국에서 온 전세버스가 줄지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회 참가 인증샷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국민의힘 현역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해 얼굴도장을 찍었다. 12·3 내란사태 뒤 ‘극우’로 치부되며 주목받지 못하던 탄핵 반대 세력에게 ‘보수의 심장 대구’는 자신을 드러내기에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매주 주말 동성로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위험을 감내하며 광장으로 모인다. 특정 정당을 대표하는 도시로 불리는 지역에서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한국 민주주의 연구팀(강우진 교수)과 대구사회연대노동포럼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20∼30대 183명을 설문한 결과, 이들 가운데 59.09%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집회에 나왔다고 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71%가량은 스스로 진보 성향이라고 답했지만, 54%는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집회에서 “윤석열 탄핵”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구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설치를 비판하고, 여성·장애인·이주노동자·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토론하고, 매주 버려지는 종이 손팻말을 줄이려고 팻말 없는 집회를 열기도 한다. 연구팀은 “동성로에서 응원봉을 든 사람들이 대통령 하나 갈아 치우자고 모인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원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위기는 대구 정치의 변화를 끌어낼 기회”라고 분석했다.
지난 15일 열린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은 한 대구시민은 “주중에 더러운 말로 더럽힌 귀를 씻기 위해 매주 광장을 찾는다. 광장을 더 많은 사랑의 언어로 채워서 계속되는 파시스트들의 내란 선동, 혐오와 폭력을 품어 안아버리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광장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치유받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구·경북도 변화를 경험한 적 있다.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당선 때 얻은 득표에 견주면 반토막 수준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대구 전체 지역구 기초의원 가운데 국민의힘 계열이 아닌 당선자가 전체의 44.11%를 차지하며, 앞선 지방선거보다 5배 이상 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파면돼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후보가 누가 되었든 국민의힘 쪽은 대구·경북을 향해 무한 구애를 해 올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여전히 다른 지역보다 높을 것이고, 지역 혐오는 반복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대구·경북의 목소리는 또다시 움츠러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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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의 안전망이니까”. 민주노총대구본부 엑스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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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더디지만,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상을 파고드는 혐오에도 ‘윤석열 즉각 파면, 국민의힘 해체, 대구시민시국대회’는 오는 주말 20번째 집회를 연다. “우린 서로의 안전망이니까.”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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