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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디르이야 궁전에서 1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하고 있다. 왼편에는 미국 쪽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아래부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른편에는 러시아 쪽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아래부터)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보좌관이 앉았다. 가운데에는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왼쪽부터)과 무사아드 빈 무함마드 아이반 안보보좌관이 앉아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날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빼고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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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이 막이 올랐다.
미국 대표단은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장관급 회담을 했다. 이날 리야드 디르이야 궁전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보좌관과 마주 앉았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과 무사아드 빈 무함마드 아이반 안보보좌관도 참석한 이날 회담에 앞서 이들은 1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취재진의 사진 촬영에 응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회담장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한 전쟁 당사자 우크라이나 쪽 사람들의 모습은 없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외면하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쪽 관계자들은 답하지 않았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미 국무부 태미 브루스 대변인은 전날인 17일 리야드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담은) 러시아가 평화를 위한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단계”라고 밝혔다. 브루스 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12일) 첫 통화에 따른 후속 조처”라며 “첫번째 단계가 가능할지,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이것이 관리될 수 있을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목표는 이번 회담이 진전을 이룰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이번 회담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실제 평화를 위한 협상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제외됐지만 추후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브루스 대변인의 발언과 달리 러시아 쪽은 회담이 순전히 미국과 러시아 간의 양자 협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과 리아노보스티 통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협상에 참여하는 우샤코프 외교보좌관은 17일 리야드에 도착해 “우리는 미국 쪽과 협상하러 왔다”며 “이건 순전히 양자 협의다. 리야드에서 3자 간 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배제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종전 협상이 가시화되자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유럽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소집해 17일 파리에서 긴급히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8개국 유럽 정상과 유럽연합(EU) 고위 간부 등은 머리를 맞대고 유럽의 통일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은 전했다. 이 자리에선 유럽 정상들은 미국이 제시한 종전 협상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날 로이터에 익명을 요구한 한 정상회의 참가자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힘을 통한 평화’ 방식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 정상들은 이날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유럽 정상들은 이날 국방비 지출 증액에 관해 중론을 모았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군사력에 대해 구체적 조처가 즉각 이뤄지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없다”고 말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모든 유럽 국가가 자국 국방비를 늘려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전 협상에서 존재감 있는 역할을 원하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고 미국이 이를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스타머 총리는 “미국의 안전 보장이 있어야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공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약 3만명의 유럽군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돼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특히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군수물자와 공군력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영국의 안은 유럽 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총선을 앞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평화유지군 파병을 꺼린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가 벌이는 잔인한 전쟁 한가운데에서 파병 논의가 추진되고 있다”며 미국이 평화유지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독일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도 미국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표했다.
한편, 종전 협상이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진행되자 수세에 몰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협상 논의에서 자국이 배제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17일 보도된 독일 방송 아에르데(ARD)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안을) 그냥 협상 테이블에 올려서는 안 된다. 아무도 아프가니스탄 2.0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보장하지 않고 러시아와 휴전하면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김미향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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