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베이징에서 병사
건국 원로인 예젠잉 사위로 유명
사위는 부패 관리로 낙마 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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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우자화 전 중국 부총리와 부인 예추메이. 양 옆은 두 아들로 보인다./신화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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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쩌우 전 부총리는 지난 16일 밤 베이징에서 병으로 유명을 달리 했다. 무슨 병을 앓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저 숙환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통신은 이날 이처럼 부고를 전하면서 "그가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당원이자 오랜 시험을 거친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였다. 경제건설 전선과 국방공업전선, 사회주의 법제 건설의 뛰어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1년부터 8년여 동안 부총리를 지낸 거물로 항일 운동에 앞장선 저명 언론인 쩌우타오펀(鄒韜奮)의 아들로 유명하다. 또 중국 건국 원로인 예젠잉(葉劍英·1897∼1986)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상무위원장의 큰 사위이기도 하다.
1926년 상하이(上海)에서 출생한 그는 옛 소련의 모스크바 바우만 고등기술학교(현 바우만 모스크바 공과대학) 기계제조학과를 졸업한 다음 정부 기관에 투신, 정치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1966∼1976) 때는 부인인 예젠잉의 장녀 예추메이(葉楚梅) 전 기계공업부 부국장과 함께 홍위병들에게 고문을 받고 감금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문혁 이후 다시 중용돼 1985년 병기공업부 부장(장관), 기계전자공업부 부장 등을 거쳤다.
1991년 부총리, 1992년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다음 1998년 3월 물러났다. 이후 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가 2003년 완전히 은퇴했다.
그의 가족 중 부인 예추메이는 지난해 9월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외에 유일한 사위 쑤수린(蘇樹林·63) 전 푸젠(福建)성 성장은 2015년 비리로 낙마하는 횡액을 당한 후 1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있다. 그에게는 사위 가족이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아픈 손가락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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