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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어야 할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추가됐다. 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단쇄 지방산이 항암 작용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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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류, 과일류, 통곡물, 콩, 견과류, 해조류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촉진하고, 포만감을 높여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며, 혈당과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영양소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어야 할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추가됐다. 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단쇄 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이 항암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쇄(짧은 사슬) 지방산은 여러 개의 탄화수소 사슬로 이뤄진 지방산 중 탄소 수가 6개 이하인 것을 말한다. 대장에 있는 장내 미생물이 위와 소장에서 소화, 흡수되지 않은 섬유질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부산물이다. 가장 흔한 단쇄지방산으로는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부티르산 세 가지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프로피온산과 부티르산이 건강한 인간 세포와 대장암 세포, 쥐의 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본 결과, 두 지방산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대장암 억제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진대사’(Nature Metabolism)에 발표했다.
단쇄지방산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며 혈당과 염증 조절에 관여하는 등 다양한 인체 생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단쇄지방산이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하기는 했으나 정확한 작용 기제를 규명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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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감싸고 있는 단백질에 작용해 유전자 발현 조절
연구진은 두 지방산이 디엔에이(DNA)를 감싸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에 달라붙어 유전자 발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걸 확인했다. 지방산이 일종의 분자 스위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는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거나 디엔에이 발현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차단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유전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존의 추정을 뒤집는 것이다.
히스톤은 단순히 DNA를 감싸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히스톤에 특정한 화학적 변형이 일어나면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기도 하고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를 후성유전학적 변화라고 부른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스나이더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섬유질 섭취와 항암 효과가 있는 유전자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발견했다”며 “단쇄 지방산은 온몸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온몸에 적용되는) 글로벌 메커니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건강한 대장 세포와 대장안 세포 모두에서 두 지방산이 히스톤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달라붙어 세포 성장과 분화, 이온 수송에 관련된 유전자에 직접 작용하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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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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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장내미생물-유전자 관계 규명
이 발견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변형이 건강한 세포와 암세포에 다르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정상 대장 세포에서 지방산은 건강한 유전자 발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반면 대장암 세포에서는 암세포의 번식을 돕는 비정상적인 유전자 활성화를 방해했다. 연구진은 이는 식이섬유 섭취가 대장암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생쥐에게 섬유질이 풍부한 먹이를 주고 효과를 살펴봤다. 그 결과 생쥐의 장 조직에서 비슷한 형태의 히스톤 변형이 나타나는 걸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식품과 장내 미생물, 유전자 조절이라는 인간 생물학의 다양한 측면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연결해준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되며, 장내 미생물은 유전자가 발현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화합물을 생성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는 격언을 새삼 일깨워주는 연구가 됐다.
연구진은 이런 단쇄지방산이 유전자 발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좀 더 정확히 알게 되면 대장암을 포함한 장 질환에 대한 치료법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정보
Short-chain fatty acid metabolites propionate and butyrate are unique epigenetic regulatory elements linking diet, metabolism and gene expression. Nat Metab (2025).
https://doi.org/10.1038/s42255-024-01191-9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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