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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년 05월 2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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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웅 대전고검 검사는 지난 1월2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징계 취소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가 지난해 2월 내린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취소하라는 판결이었다. 징계는 2020년 7월29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던 그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 발단이 됐다. 한동훈은 ‘검·언유착’ 사건(채널에이 사건) 핵심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수사팀장이었던 정진웅은 검사들과 함께 한동훈의 휴대전화 유심을 압수하러 갔었다. 한동훈이 비밀번호를 끝내 말하지 않은 바로 그 휴대전화였다. 부장검사는 보통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동행하지 않지만, 정진웅은 검사장인 한동훈을 나름 예우한답시고 현장에 갔었다. 예우가 고초로 이어질 줄은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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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정진웅을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했으나 2022년 11월 대법원은 ‘폭행의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2024년 2월 중징계를 내렸다. 대법 판결은 일말의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형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있었고, 과실 정도 등을 고려했을 때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처분을 내리는 건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무죄라고 판단한 사건을 근거로 내린 징계는 공정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법무부는 징계 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한동훈∙정진웅 몸싸움을 ‘독직폭행’으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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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21일 정진웅 당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차장검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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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직폭행’ 논란은 검·언유착 수사가 좌초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동훈이 휴대전화에 잠금장치를 걸려는 것으로 판단한 정진웅이 휴대전화를 빼앗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을 윤석열 사단은 독직폭행으로 몰아갔다. 증거인멸을 막으려다 벌어진 일인데도, 수사기관이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인 것처럼 몰고 갔다. 윤석열 사단은 한동훈이 직접 작성한 진정서를 근거로 정진웅에게 칼을 겨눴다. 야전 지휘관이 흔들리자, 검·언유착 수사는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앞서 윤석열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정현 1차장-정진웅 형사1부장)이 이끄는 이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한동훈에 대한 감찰을 철저하게 막았던 윤석열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지휘권을 잃기 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수사에 훼방을 놨다.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2020년 12월15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에서 출석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검찰총장의 최측근이라고 알려진 분(한동훈)이 관련돼 있다면 그럴수록 수사팀에 ‘수사를 더 엄정하게 철저하게 하라. 나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관여하지 않겠다’ 그렇게 해주셨으면 조기에 사건 전체가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과도하게 과민반응을 일으키고 화내시고 참모들 의견을 무시하고…(중략).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채널에이 사옥에 압수수색 들어갔을 때부터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해 언론을 통한 수사 흠집내기 시도가 엄청나게 많았다. 수사팀은 정말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은 2020년 6월4일 한동훈이 피의자로 정식 입건되자 박영진 대검 형사1과장(현 전주지검장, 문재인 전 대통령 관련 수사 지휘) 등 측근들로 ‘레드팀’을 구성했다. 레드팀은 수사팀이 채널에이 이아무개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고 하자, ‘한동훈 검사장은 혐의가 없다. (채널에이 기자와) 공모에 가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윤석열이 소집한 회의에 제출했다. 레드팀의 이 주장은 터무니없었다. 한동훈의 휴대전화는 포렌식도 안 된 상태일 뿐 아니라, 채널에이 기자를 조사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도 레드팀은 아무 근거도 없이 한동훈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수사팀은 대검에 수사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의심했다. 이정현은 “수정관(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총장님 지시에 따라 한 달 전부터 사모님, 장모님 사건과 채널에이 사건 전담해서 정보수집을 했다고 들었는데, 관련 법리도 그곳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고 검찰총장 징계위에서 진술했다. 당시 수정관실에는 ‘고발사주’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이 있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총장 최측근 수사 압박 심해” 울먹인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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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17일 검·언유착\' 의혹 사건 피의자 이아무개 전 채널에이 기자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고 차에서 내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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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단의 압박은 수사팀을 크게 위축시켰다.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는 검·언유착 수사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정권의 청부 수사’라고 비아냥대는 글이 단체 카톡방에서 돌기도 했다. 7월17일 채널에이 기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비장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만약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면 수사는 좌초되고 수사팀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검사는 판사에게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감정이 복받쳐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는 ‘총장의 최측근이 연루된 사건이라 수사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로) 수사의 물꼬를 터 달라’고 했다.
수사팀은 이 기자와 한동훈의 접촉을 전후로 ‘윤석열-한동훈’, ‘김건희-한동훈’, ‘한동훈-손준성’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패턴의 통신 내역을 제출했다. 한동훈의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였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법원은 이 기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동현 영장전담판사는 이례적으로 장문의 구속 사유를 밝혔다. “피의자가 특정한 취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검찰 고위직과 연결하여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들이 있다. (중략) 피의자와 관련자들은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하여 수사를 방해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커 보인다”고 했다. 수사팀의 완승이었다.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10여일 뒤 불거진 ‘독직폭행’ 논란으로 수사팀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동훈의 진정서를 접수한 서울고검은 즉시 정진웅에 대한 감찰에 나섰다. 서울고검 감찰부는 정진웅과 함께 압수수색을 나간 검사와 수사관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한창 수사를 하고 있는 검사들을 감찰하겠다는 것은 수사에 훼방을 놓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성윤은 김영대 서울고검장을 찾아가 ‘검·언유착 수사가 끝날 때까지 소환 조사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고검은 조사를 강행했고, 김영대 후임인 조상철 서울고검장은 2020년 10월27일 정진웅을 기소했다. 수사팀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한달 뒤(11월24일) 터진 ‘추(추미애)-윤(윤석열) 갈등’은 검·언유착 수사의 좌초를 가속화했다. 윤석열이 추미애의 직무정지와 징계(정직 2개월) 조처에도 법원의 잇단 도움으로 자리를 지키자, 검찰 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이 고조됐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 때문에 윤석열이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한동훈을 겨냥한 수사는 윤석열 축출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은 윤석열 징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성윤에게 ‘지휘부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보수언론에 ‘이성윤 사퇴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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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13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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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윤은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 고발 사건 수사도 지휘하고 있었다. 검사들은 윤석열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수사 시늉만 내고 있었다. 이성윤은 사건을 재배당하고 인력을 보완하면서 수사를 독려했다. 윤석열은 그런 이성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이성윤의 사퇴는 윤석열이 가장 바라던 바였다.
‘한동훈 무혐의’ 들고나온 수사팀의 반란
윤석열이 2020년 12월24일 법원의 징계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총장에 복귀하자, 수사팀 안에서 ‘한동훈 무혐의 처분’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진웅 후임으로 형사1부장에 임명된 변필건(현 법무부 기조실장)이 총대를 멨다. 변필건은 2021년 1월18일 수사팀 검사들을 데리고 이성윤을 찾아가 한동훈 무혐의 처분을 압박했다. 한동훈의 휴대전화를 포렌식도 못 한 상태였지만, 변필건은 ‘포렌식은 별 의미 없다’, ‘채널에이 기자 재판에 아무 영향 없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나중에 채널에이 기자는 1,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는다.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게 무죄 이유였다.
수사팀은 또 최강욱을 채널에이 기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결재를 올려 이성윤을 압박했다. 수사 방향을 검∙언유착에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전환한 것이다. 수사팀은 일주일 뒤 다시 한동훈 불기소 처분 결재를 올렸다. 이성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데서 공격이 들어왔다. 윤석열이 직접 나선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법치’를 강조하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민과 국회에 의해 155분만에 제압돼 탄핵과 형사처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합니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지지자들에게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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