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7 (목)

우크라 종전 ‘패싱’당한 유럽정상들 긴급회동…유럽군 파병 놓고 입장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럽 정상들, 종전 협상에 우크라·유럽 참여 주장

파병엔 의견 엇갈려…영·프 적극적, 독일 부정적

헤럴드경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비공식적으로 열린 유럽 주요국 정상들의 긴급 회의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단적 행보에 반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비공식 긴급회의를 가졌다.

참석자는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덴마크·폴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서 비공개로 만나 3시간 반가량 회동했다. 이날 회동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전격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서양 동맹’ 관계를 무시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나서기로 하자 화급히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비공식 회동이었던 만큼 이 자리에서 특정 이슈에 관한 의사결정이 이뤄지진 않았다. 참석자들이 공동 서명한 선언문이 발표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 의지, 현재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진행되는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우긴 했으나 사실상 유럽 땅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해 유럽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국 선거운동 문제로 가장 먼저 회의장에서 나온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며 “평화 협정에 대한 논의는 환영하지만, 우크라이나에 강요된 평화는 거부한다”며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의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결정은 없어야 하고 유럽 없이 유럽에 대한 결정 역시 없어야 한다”고 했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유럽 안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종전 협상에 우크라이나와 EU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힘을 통한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며 “우크라이나의 독립, 주권, 영토의 보전과 강력한 안보가 보장되는 평화를 존중할 것”이라고 적었다.

성급한 종전 협상이 자칫 유럽에 더 큰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메테 프리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불행히도 러시아는 지금 유럽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너무 빠른 휴전은 러시아에 전열 재정비 후 우크라이나나 유럽 다른 나라를 공격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진 유럽 자강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을 위해 유럽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했다.

투스크 총리는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유럽 파트너들은 더 큰 유럽 방어 역량을 위한 시기가 왔음을 깨닫고 지출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전액을 부담해야 하고 동시에 유럽에서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적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과거 안락함에 절망적으로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새 시대를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안보와 대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은 나토의 틀 내에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앞으로도 긴밀히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타머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제공되는 모든 보장에는 “미국이 안전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러시아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투스크 총리 역시 “유럽과 미국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도 “유럽과 미국 사이에 안보 문제에 책임의 분담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나토는 우리가 함께 행동하고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헤럴드경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유럽 주요 정상들의 비공식 긴급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회동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약 20분간 통화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로 인해 긴급히 성사된 자리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소통하며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날 회의에서 종전 협상 후 유럽군을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는 안이 거론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 후 참석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확연한 입장차를 보였다.

파병론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온 숄츠 총리는 관련 질의에 아직 전쟁 중이며 종전 회담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파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투스크 총리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해 폴란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 나설 것이지만 폴란드 군대를 파견하는 건 상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전날 언론 기고문을 통해 영국군 파병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스타머 총리는 관련 논의가 “초기 단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적인 평화 협정이 체결된다면 다른 국가들과 함께 영국군을 현지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해 초부터 유럽군 파병 가능성을 언급하며 적극적인 입장이다.

EU 회원국 중 이날 파리 회동을 비판하는 진영도 있다.

친트럼프·친푸틴 성향인 헝가리의 씨야르토 페테르 외무장관은 “오늘 파리에서 친전쟁, 반트럼프, 불만에 가득 찬 유럽 지도자들이 모여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정을 막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트럼프의 야망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이날 회동을 비판하면서 유럽군 파병 문제는 “EU가 관여할 수 없는 주제”라고 비판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