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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멀어지는 북한 비핵화…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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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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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 비핵화가 요원해지고 있다. 북한 핵 능력은 수십기의 핵탄두와 다양한 운반수단을 갖춰, 이제 초보적 억제 수준을 넘어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로 발전한 상태다. “영원한 전략자산”으로서 핵이 헌법에까지 명시됐고, 무엇보다 북·러 밀착으로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어 비핵화 추동력마저 상실됐다. 비핵화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북핵 위협을 어떻게 억제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앞에 어떤 선택지가 있으며,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일까?



현재 한·미의 북핵 대응은 확장억제와 한국군의 첨단 재래식 억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현 억제 전략에 결정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자들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론하나, 냉전 당시 소련의 수천기 아이시비엠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확장억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억제는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만으로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비핵 억제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하 100m 벙커를 관통하는 현무-5 미사일만 하더라도 북한의 계산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핵자산이다. 억제의 본질은 파괴력 자체가 아니라 적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핵 능력이 끊임없이 고도화되는 현실 속에서 국민 정서상의 불안감을 현 억제 태세로 완전히 해소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추가로 고려할 수 있는 억제 옵션으로 전술핵 재배치가 거론된다. 전술핵 재배치는 핵무기의 가시성 덕분에 확장억제 신뢰성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여러 한계와 단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군사적 효용성이 의문이다. 미국은 괌 발전 폭격기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필요시 얼마든지 북한에 보복할 수단을 이미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군사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한반도에 배치된 전술핵은 유사시 북한의 제1표적이 됨으로써 위기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발과 배치를 둘러싼 국내 정치적 분열도 부담 요인이다.



가장 확실한 억제 옵션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다. 그러나 핵무장은 당위성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비용과 위험, 그리고 기술적 가능성 측면에서 대안이 되기 어렵다. 핵확산방지조약(NPT)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안을 미국이 용인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그렇다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국제적 압박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연료 도입이 차단되어, 국내 전력 생산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보다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 확보가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체제에서 은밀하게 재처리를 하거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법 없이 핵무장을 주장하는 건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남는 대안은 핵잠재력 확보다. 한국이 안보적 측면은 물론 산업적 관점에서 완전한 핵연료주기(농축과 재처리 권한)를 갖춰야 할 당위성은 분명하다. 국민 여론은 자체 핵무장이 어렵다면 최소한 핵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다수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농축과 재처리 역량을 확보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농축 공급망의 진영화와 핵연료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핵잠재력을 핵무장을 향한 경로로 인식하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와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어떤 해법을 내놓을 것인가에 있다. 크게 두가지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변화된 정세와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핵잠재력을 당당히 주장하는 방안이다. 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핵잠재력을 확보한 일본 모델은 어차피 한국에 적용되기 어려우므로 핵잠재력 용어 자체를 금기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히려 잠재력조차 허용되지 않을 경우 한국 내 핵무장 압력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고충을 설득의 논리로 삼을 수도 있다. 다른 접근은 평화적 핵 주권 같은 대안적 표현을 사용하는 방안이다. 핵무장을 직접적으로 암시하지 않으면서 핵잠재력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우엔 국제사회의 경계심은 덜 자극하지만 대국민 메시지 면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대안은 없고, 어떤 선택도 쉽지 않다. 다만 극단적 비관주의와 장밋빛 기대로 현재의 억제 태세를 폄하하며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길이 될 수 없다. 좀 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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