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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심각한데 웃긴 '미키17'…녹진한 봉준호식 고찰과 위트 [TEN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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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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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 봉준호 감독. / 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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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봉준호'다. 그의 고찰과 위트가 녹진하다. 인간 사회의 계급과 빈부 격차 문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 온 봉준호 감독답게 신작 '미키17' 역시 익살스럽다.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메시지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특기를 또 한번 볼 수 있다.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차렸다가 거액의 빚을 지고 사채업자에게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사채업자에게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지구를 떠나는 것. 미키는 황폐해진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는 '행성 개척단'의 우주선에 익스펜더블(소모품)로 몸을 싣게 된다. 익스펜더블은 개척자들을 대신해 위험한 일을 도맡거나 실험 대상이 되는데, 죽으면 다시 프린트된다. 행성 개척단은 4년 반의 우주 비행 후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다. 16번 죽어 17번째 프린트된 미키17은 니플하임 탐사를 나섰다가 우주 생명체 크리퍼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한다.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으로 돌아오지만 우주선에는 이미 미키18이 프린트돼 있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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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근미래인 2054년이다. 한국 배우들이 풀어낸 희비극이 기생충이라면, 해외 배우들이 그려낸 비희극이 '미키17'이다. 봉 감독은 이번 작품을 "발 냄새 나는 SF. 인간 냄새 나는 SF"라고 했는데, 봉 감독 특유의 '냄새'가 가득한 작품이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에서는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계급 문제를, '옥자'에서는 대량 축산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의 생명 문제를, 기생충에서는 양극화 사회의 문제를 그려냈다. 이번 작품에서도 봉 감독은 환경 파괴, 인간성 상실, 정치 갈등 등 사회 여러 문제를 골고루, 그리고 해학적으로 풀어간다.

'미키17'은 극한의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타인의 죽음에 무감한 사회, 고도화된 과학기술 사회 속 인간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담는다. 영화에서는 미키 자신마저 자신의 '죽음'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 속 지배 계층은 군림하고 노동 계급의 평범한 사람들은 선동된다.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부와 권력은 특정 계층에 편중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통제된 사회 안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력마저 흐려진 채 찬양하기 바쁘다. 불안한 세태를 이용하는 기득권과 혼란스러운 환경으로 인해 분별력을 잃어버린 사회를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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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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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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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지배 계층인 마셜(마크 러팔로)·일파(토니 콜렛)의 행태는 위선적인데, 관객들은 우스꽝스럽다고 느낄 대목이다. 마셜은 선거에 두 번 실패한 정치인인데, 극단 종교 세력의 자본을 등에 업고 행성 개척단의 리더가 된다. 허세와 과한 자기애로 가득 찬 독재자 마셜은 선민의식을 자극하는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내 일파 없이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아둔한 인물이다. 사람들이 '최고'라고 믿는 정치인의 실상이다.

마셜의 사회는 성관계마저 통제한다.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열량 소모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 그럼에도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은 뜨겁다. 삭막한 사회 속에도 인간성, 따뜻함이 남아있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알콩달콩하기도 격정적이기도 한 둘의 모습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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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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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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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버전 미키를 그대로 '프린트'할 뿐인데도 미키들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흥미롭다. 영화는 외모와 뇌 정보가 동일하다고 해도 각 미키들은 결국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서로 다른 성격의 미키17, 미키18을 매끄럽게 오간다. 소심하고 순박한 미키17과 대범하고 제멋대로인 미키18. 얼굴만 같은 로버트 패틴슨의 쌍둥이 형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흥미롭다. 마크 러팔로는 마셜 역으로 연기 인생 처음 빌런을 연기했는데, 압도적이고 인상적이다.

'미키17'은 국내에서는 오는 28일, 북미에서는 다음달 7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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