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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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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배구 명가 다시 일으켰다, 코트의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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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프로배구 1위 질주, 현대캐피탈 블랑 감독

조선일보

“김장 김치도 꼭 먹어보고 싶어요” - 지난 6일 오후 충남 천안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 그는 “선수 시절 아웃사이드 히터, 세터, 리베로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는데 감독을 하면서 배구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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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한국에서 ‘배구계의 히딩크’로 통한다. 필립 블랑(65) 현대캐피탈 감독. 현대캐피탈은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를 평정하는 중. 승점 73(25승 3패)으로 작년 V리그 최초로 통합 4연패(連霸)를 이룩한 대한항공(승점 52·17승 11패)을 멀리 밀어내고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불과 지난 시즌만 해도 리그 4위에 그쳤던 현대캐피탈은 한 시즌 만에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눈에 띌 만한 전력 보강이 없는 상태에서 거둔 성과. 블랑이 있고 없고 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프랑스 출신으로 환갑을 넘긴 그는 올해로 지도자 생활만 35년 차. 약체로 평가받던 프랑스 국가대표팀을 12년 동안 이끌며 배구 세계선수권 동메달, FIVA(국제배구연맹) 네이션스리그(전 월드리그) 준우승이란 업적을 일군 뒤 2022년부터는 일본 대표팀을 맡아 2023년 네이션스리그 3위를 차지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일본이 세계 대회 3위 이내에 입상한 건 46년 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2위로 한 단계 더 올라섰다. 그 기세를 발판으로 파리 올림픽 메달 도전에 나섰으나 8강에서 이탈리아에 무릎을 꿇으며 도전을 멈췄다. 먼저 2세트를 잡고도 내리 3세트를 내준 아쉬운 역전패였다. 한국은 지역 예선에서 떨어져 아예 출전조차 못 했던 올림픽 무대였다.

이후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세계적 명장이 한국 팀을 왜 맡았을까. 블랑 감독은 “(현대캐피탈) 사무국이 영입 제안을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찾아달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매료됐다. 현대캐피탈 과거 경기나 우승 경력 등을 찾아봤고, 이 팀을 다시 강팀으로 올려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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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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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은 V리그 정규 시즌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에 빛나는 ‘원조 명문 구단’. 하지만 2019년 이후 우승은 고사하고 ‘봄 배구(플레이오프)’ 진출도 꾸준히 못 한 ‘몰락한 명가’ 신세였다. 2021-2022시즌에는 창단 첫 리그 꼴찌도 기록했다.

그런 팀이 올해는 압도적 1강(强)으로 자리 잡았다. 18일 천안 안방에서 열리는 대한항공전에서 이기면 2017-2018시즌 이후 7년 만에 정규 리그 우승을 조기에 이룬다.

감독 부임 이후 일성(一聲)은 ‘피지컬 강화’였다. 일본 대표팀을 맡았을 때, 정체된 한국 배구를 보면서 체력적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블랑 감독은 “클럽하우스에 오자마자 실력 있는 웨이트 트레이너를 초빙해서 피지컬 트레이닝 체계부터 다시 잡았다. 훈련 빈도와 강도를 높였다”며 “한국 배구는 스파이크가 강한데, 피지컬을 강화하면 장점이 더 빛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강훈련만 고집하진 않는다. 코치진과 의료팀이 선수 한 명 한 명을 밀착 점검해 그날 상태를 판단한다. 이에 따라 훈련 강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부상을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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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충남 천안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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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은 지난 5일 16연승 행진을 달리다 3위 KB손해보험(승점 50·18승 10패)에 발목을 잡혔다. 블랑 감독은 “긍정적인 패배였다”고 했다. 그는 “결국 중요한 건 챔피언결정전이다. 연승에 취하기보다는 선수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 오히려 시의적절했다”고 했다. 그 이후 2연승을 달리며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현대캐피탈은 팀 공격 성공률 1위(54.07%). 블랑 감독은 “평소에도 공격 코스나 상대 블로킹을 활용할 때 ‘창의적으로 하라’고 강조한다”며 “점수가 뒤져 있을 때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공격하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그가 지향하는 팀 구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팩토리팀”이라고 했다. “배구에서 ‘서브’를 제외하면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레오나 허수봉은 뛰어난 공격수지만 리베로 박경민이 공을 받아주지 않거나 세터 황승빈이 공을 띄워주지 못하면 이만큼 활약할 수 없죠. 톱니바퀴 돌듯 조직적으로 완벽한 배구를 하는 게 꿈입니다.”

한국에 온 지는 이제 7개월. 블랑 감독은 “가끔은 배구 선수였던 아버지와 비치 발리볼을 하던 고향 몽펠리에의 해변이 생각난다”면서도 “프랑스는 고기를 스테이크로 먹는 반면 여긴 직화구이로 먹는다. 요즘은 돼지갈비가 맛있어 곧잘 구워 먹는다. 익은 김치 말고 김장 김치도 꼭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구단 역대 최초 트레블(KOVO컵·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 KOVO컵은 이미 제패했고, 정규리그 우승은 목전에 두고 있다. 그는 “지난해 KOVO컵은 파리 올림픽 8강 경기에서 진 뒤 한국에 와서 바로 치른 대회였다. 결승에 올라 결국 우승컵을 들었는데, 올림픽 아쉬움이 싹 달아나는 멋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구단의 역사를 (제 손으로) 새로 쓰고 싶습니다. 이런 도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천안=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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