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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4 (월)

한강·임진강을 동시에 굽어보는 평화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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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강 풍경. 사진 원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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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반도였다. 한강 하류가 동쪽 구역으로 흐르다가 북쪽 구역을 휘감아 돌다가 서해바다로 빠져 나간다. 강화섬과 김포 땅 사이에는 강 같은 바다가 서쪽 구역으로 쭉 이어진다. 바다폭과 강폭이 별로 차이가 없다. 아니 강이 바다보다 훨씬 더 폭이 넓다. 그래서 그 강은 단순히 한강(큰강)이란 이름으로는 부족했다. 북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남쪽에서 흘러오는 한강이 합수하고 개성을 지난 예성강도 강화섬 들머리에서 물의 양을 더 보태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의 지류까지 합해지면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강(祖江, 祖:할아버지 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강의 민물이 아니라 서해바다의 짠물에다 방점을 찍으면 조강(潮江, 潮:밀물썰물 조)이 될 터이다. 조강포에는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1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특산물인 황대어(黃大魚)가 유명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중국 사신들까지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철책선이 지나가면서 주민들은 이주하게 되었고 타지의 일반인은 그 강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조강이란 이름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차츰차츰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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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임진강을 굽어보는 평화의 종. 사진 원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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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전망대는 관람 절차가 한 단계 더 있는 불편함 때문에 다소 한적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는 달리 설을 앞둔 연휴 첫날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붐볐다. 입장을 위해 예약은 물론 결제까지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입장권 교환을 위해 긴 줄까지 서야 했다. 넓은 강을 조망하기 위한 수업료라 생각하고 마음을 바꿔 먹으니 이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입구에서 셔틀버스에 올라 인원 수를 체크하는 청년 군인들의 검문 모습까지도 색다른 문화상품(?)으로 닿아왔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는 ‘스타벅스 로고’ 안내판이 가장 먼저 반겨준다. 잊혀져 가던 조강을 다시 대중의 기억 속으로 소환한 것은 ‘스타벅스’ 공로가 적지 않다.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에서 넓다란 조강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이 주는 문화의 힘은 컸다. 작년(2024년) 늦가을 ‘김포애기봉생태공원점’의 개점은 호사가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대기 시간도 엄청 길었지만 모두 그 정도의 수고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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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강전망대에 도착했다. 멀리 임진강과 한강이 합수하는 지역을 안내판을 통해 그 위치를 가늠하고서야 동북쪽 방향으로 가늘게 실눈을 뜨고서 지그시 응시했다. 몇달 전에 들렀던 파주 오두산 전망대 부근이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예성강까지 보려고 한다면 강화도 북쪽 해안가 전망대까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렇게 호수 같이 잔잔한 강물인데 옛 선비들은 물살이 굉장히 거세고 파도까지 치는 강물로 묘사했다.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과 강물 위에 조각배를 띄우고서 건너가야 하는 사람 간의 차이라고나 할까.





정두경(鄭斗卿 1597~1673) 선생은 ‘주과장단’(舟過長湍 배를 타고 장단지역을 지나다. 장단콩이 특히 유명한 곳)이란 글 속에서 “조수가 조강으로 밀려오는 모습이 마치 산과 같은 파도가 바위를 치면서 올라온다”고 했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다 보니 밀물 때는 강물과 바닷물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풍광이었다. 하지만 밀물을 제대로 이용하는 능숙한 뱃사공도 있기 마련이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6~1682) 선생은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 무술년에 배를 타고 가며 남긴 여행기)에서 “황포돗배는 조강포에서 만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밀물을 타고 한양(현재 서울)까지 내달렸다”고 했다. 밀물로 인한 파도 때문에 고생한 이가 있는가 하면 밀물을 이용하여 물류 시간을 줄이는 찬스에 강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조강의 두 얼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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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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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한강을 동시에 살핀 후 고개를 돌리니 뒤편 광장에는 ‘평화의 종’이 몇 가지 중첩된 사연을 안고서 매달려 있다. UN(유엔)이란 글자를 형상화한 웅장한 철 구조물이 종루를 대신했다. 아널드 슈워츠만 선생에게 재능 기부를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88서울올림픽 디자인 자문위원을 지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종을 제작한 이는 주철장(鑄鐵匠) 국가무형유산 기능 보유자(112호) 원광식 선생이다. 몇 군데 광고 모델로 나올 만큼 ‘혼을 담은 집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쇳물이 눈에 튀어 한쪽 눈을 잃고도 가업으로 이어오는 종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 어른이다. 평화의 종은 동양의 종 장인과 서양 디자이너 합작품인 셈이다. 종 재료에는 더 많은 사연이 함께 녹아 있다. 비무장지대(DMZ) 녹슨 철조망과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탄피, 그리고 철거된 애기봉 점등 철탑의 파편 등이 함께 들어간 합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겨울 낮은 짧다. 저녁 해를 뒤로 하고서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한강을 옆에 끼고 달리며 그동안 다녔던 민통선 안의 유적 답사 일정을 되돌아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안보관광’이란 이름으로 민간인통제선은 역사성을 지닌 관광지 중심으로 일부 개방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연천 장남면에 있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도 들를 수 있었고, 철원 월정리역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며 포격에 부서져 잔해만 남은 기차도 만날 수 있었다. 연천 왕징면에 있는 조선의 명필이요 대학자인 허목 선생 묘역도 찾았다. 예약이 필수인지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덕분에 오히려 관광 뒤에 오는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또 종로 조계사에서 거리가 가깝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부담도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 있으며 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여행 취향과 잘 맞아떨어졌다. 김포의 조강전망대도 그랬다.



원철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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