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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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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를 휘몰아치는 파시즘적 징후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세기 초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실패는 보복적 관세의 높은 벽을 쌓는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대공황을 악화시켜 결국 나치즘과 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전후 브레턴우즈 체제의 확립을 통해 시장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착근된’ 자유주의가 도입됐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이를 포기한 닉슨에 이어 레이건과 대처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다시 신‘자유’주의화했다. 나치 구호를 외치는 미국의 극우가 지지하는 트럼피즘은 증상일 뿐이다. 제어되지 않은 경제적 자유는 파시즘과 전쟁을 잉태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자유’를 외치던 자가 내란을 일으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국 극우세력의 부상에 대한 독일 공영방송의 다큐는 트럼프의 당선을 공화당 내 과격파가 수십년간 극우세력을 결집한 결과로 본다. 그 시작은 1995년 하원 의장이 된 뉴트 깅그리치 의원이었다. 나는 그를 미혼모의 복지 혜택을 평생 금지하고 그 돈으로 보육원을 지어 그들의 아이를 빼앗아 주 정부가 키우자는 기괴한 제안을 한 정치가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민주당을 부패한 공산당이라 공격하며 어떤 협상도 거부하고 악마화했는데, 당시 공화당조차 그런 그를 비판했지만, 그런 정치가 일부 유권자에게 먹혀들어 감에 따라 미국의 정치적 우파는 빠르게 극단주의화하기 시작했다.
과격해진 공화당이 견인해낸 미국 극우 시민사회의 폭은 넓고도 깊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종교적 우파가 신자유주의 이후 생겨난 많은 실업자를 흡수하며 시장 근본주의자와 연합한 것이 극우세력의 기원이다. 연방 대법원을 극단적으로 우경화한 연방주의 법률가협회, 백인 남성 기독교인이라는 사회적 지위의 파괴로 존재론적 위기감을 느끼며 트럼피즘의 보병부대가 된 티파티 운동가, 이런 극우 운동 세력과 보수성향 싱크탱크에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글로벌 에너지기업 코크인더스트리 같은 자유지상주의 억만장자, 거짓말을 일삼던 트럼프에게 정당성을 입혀준 폭스 뉴스, 이 모두의 힘이 모여 트럼피즘이 완성됐다.
한국 사회에도 깅그리치보다 더 심한 정치가가 있고, 극단적인 종교적·정치적 신념의 힘으로 거둔 돈이 꽤 될 뿐 아니라, 폭스 뉴스를 능가하는 언론도 존재한다. 윤석열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이걸 믿고 아직도 탄핵에 반대하며 헌법재판소를 흔드는 것일까?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에 힘입어 트럼프를 다시 당선시킨 미국의 공화당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신자유주의의 성숙으로 파시즘 세력의 확산을 똑같이 경험하는 중이지만,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만 극우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처럼 파시즘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럽이 겪었던 잔인했던 국가 폭력의 과거를 공유한다. 극우세력이 얼마나 준동하건, 계엄령이 넘쳐나던 참혹한 현대사를 딛고 그들이 다시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을까?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 마음을 울렸던 한강 작가의 질문을 통해 우리를 구한 과거가 과연 현재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진정한 구원은 변화할 때만이 얻어진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대통령이 아닌 총리였다. 개헌만 외친다고 파시즘적 징후와 이를 발생시킨 왜곡된 경제구조와 극단적 불평등, 점차 고조되는 보호무역주의, 끝을 모르는 경기 침체가 사라지지 않는다. 죄가 없으면 받을 수 있는 특검 거부는 죄가 있을 것 같다는 의심과 정권 교체의 열망만 키울 뿐이다. 내란 이후의 선거에서는 전세계를 뒤흔드는 근원적인 구조적 문제에 가장 나은 답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선택받을 것이다.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서인지 계속 파국을 향해 달리는 윤석열 배출 정당에선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날아가던 신화 속 이카로스가 떠오른다. 밀랍이 처절하게 녹아내리며 깃털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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