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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허리케인 ‘도리안’의 예측 경로를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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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강력한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첫 임기를 보내던 2018년 6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청장을 맡고 있던 티머시 갤러뎃이란 인물은 미국 상무부에 자기 조직의 강령(mission)을 바꾸겠다고 보고한다. 미 국립해양대기청 강령의 핵심은 “기상·기후·해양·해안의 변화를 이해하고 예측”하며 “해안·해양 생태계와 자원을 보호하고 관리한다”는 것이다. 갤러뎃은 이를 다음과 같이 바꾸겠다고 했다. “대기와 해양의 조건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예측”하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경제를 향상하며, 국토와 국가안보를 지원한다.” 기후변화를 연상시키는 ‘변화’란 단어를 빼버린 것이 상징적 선언에 해당한다면, 이들이 추구하는 실질적인 내용물은 뒷문장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바로 “생명, 재산, 경제, 국토, 국가안보”다.
미 국립해양대기청은 해양·대기 연구, 날씨 예보, 어업 관리 등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무엇보다 기후변화 연구에 과학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데에 전세계에서 견줄 만한 곳이 드물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예컨대 한겨레는 ‘이주의 온실가스’ 코너를 통해 매주 전지구 평균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얼마인지 보도하는데, 그 데이터를 작성하는 기관이 바로 여기다.
1967년 이곳 연구원이던 마나베 슈쿠로는 동료 리처드 웨더럴드와 함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존 수준에서 두배로 늘어나면 지구 온도가 2.3℃ 오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이 ‘지구 물리 모델’은 기후변화를 인식·예측하는 핵심 수단이 됐다. 이런 과학의 성과는 현재 유엔 기후변화협약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전지구적인 협력 없인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정치적 모델의 근간이기도 하다.
1기 트럼프 집권 당시 미 국립해양대기청은 조직의 핵심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정부에 의해 다양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트럼프가 두번째로 집권한 지금, 그 시련은 더 센 강도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최근 이 기관이 “기후과학” “기후위기” “청정에너지” 같은 용어와 관련 있는 보조금 목록을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거나,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가 이 기관 컴퓨터 시스템에 접속해서 뭔가 하고 있다는 등 미 국립해양대기청에 대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작업’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외신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작업’의 큰 방향은 미국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 ‘프로젝트2025’에 상세하게 담겨 있다. 미 해양대기청은 ‘기후변화 경고 산업’의 주된 원동력이라서 “장래 미국의 번영에 해롭다”. 따라서 여러 조직으로 분할·축소·해체한다. 기상청은 민영화하고, 기후변화 연구의 주축인 해양·대기연구소는 축소한다. 행정부 목표에 동의하는 기관장을 앉히고 성과 기반으로 운영한다. … 심지어 보고서는 과거 갤러뎃이 바꾸려 했던 ‘그’ 강령도 콕 집어서 이죽거린다. “예측과 관리를 강조하는 기후변화 경고 산업의 강령은 ‘계획할 수 없는 것을 계획한다’는 치명적인 자만심에 근거해 설계된 것 같다.”
과거 갤러뎃이 제시했던 미 해양대기청의 새 강령은, 자본주의(생명·재산·경제)와 민족주의(생명·국토·국가안보)의 특정한 결합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견 모순투성이이고 종잡을 수 없을 듯 보이지만, 오늘날 대두하고 있는 저 정치세력이 불 때는 욕망의 실체는 사실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모두를 위해 “계획할 수 없는 것을 계획”하는 대신, 그 역량을 가져다 거대한 장벽을 세우는 데 쓴다. 그리고 오직 우리(미국-자본-인간)만이 그 장벽 안에서 보호받을 것이다.
다만 정말 슬픈 것은, 아무리 거대하게 보일지라도 다가올 위기의 크기에 견주면 그 장벽은 애처로울 정도로 초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 소속 한 과학자는 미 국립해양대기청이 겪고 있는 시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후위기에는 어떠한 경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과학 협력을 중단하는 것은 단지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우리의 능력을 망칠 뿐입니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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