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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못 짓겠습니다.”
미국 빅테크 C사 한국법인 관계자는 최근 한국 정부 관료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부 규제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는 IT 업계에서 이처럼 정부에 기업인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AI)이 추론·학습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글로벌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 중 7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IT 기업이 사업 초창기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본사 인근인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도권 내 데이터센터에 대한 제약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설립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전력에서 진행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10MW(메가와트) 이상 전기를 쓰는 영업장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자격을 평가하는 제도다. AI 추론이 가능한 중형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은 5~100MW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를 통과하지 못 한 시설은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
통상 수도권, 광역시 등 인구 밀집 지역은 데이터센터를 짓고 싶어도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당 지역에서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수 있는 여유 전력량이 평가 기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평가를 통과하더라도 장비 확충 등을 통해 전력 소비량이 늘면,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추가했다는 이유로 전력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현행법으로는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도, 장비를 늘릴 수도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막대한 유지 비용이 들지만 수도권 내 데이터센터는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된 AI와 클라우드 사업은 연구·인력개발비 중 일부에 대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설치된 사업장은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요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밀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지방에 데이터센터를 다시 짓게 되면 최소 3~4년이 걸리는 데, 그 사이 세계 AI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배려가 없이는 최소 수조원 이상이 드는 데이터센터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 정부는 세제 혜택 뿐 아니라 근로자 고용 제도, 투자 규제 제도를 대폭 완화하면서 데이터센터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도 AI·디지털을 일찌감치 국가 전략 사업으로 지정하고 IT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일본에 데이터센터를 증설하기 위해 2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데이터센터와 같은 주요 시설이 수도권에만 몰리면 안 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만, 글로벌 AI 시장에서 기업들이 치고나갈 수 있도록, 당장은 제재보다는 지원에 무게를 둬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인프라를 십분 활용해야 글로벌 AI 전쟁에서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IT 업계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실리 없는 규제에만 집중한다면 ‘AI 강국’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김민국 기자(mansa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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