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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5 (화)

이재명 대표 실용론의 엉뚱한 효과 [이철희의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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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갈등을 넘어 혐오의 정치가 극성을 부리는 거친 시대, 어떻게 하면 중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자 한다.

'이재명 대 이재명' 싸움이 된 대선구도
흑묘백묘론, 불법계엄 엄벌 분위기 훼손
누구와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밝힐 필요

한국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위기상황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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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대선에서 '날쌘' 후보 이재명과 '드센' 후보 윤석열이 맞섰다. 윤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승패가 갈렸으니 이제 둘이 다시 싸울 일은 없겠지 싶었다. 허나 웬걸. 이 대결은 '이·윤 대전'의 1차전이었을 뿐 곧바로 2차전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통해 이재명 죽이기에 나섰다. 혐의가 있어 하는 수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판이 컸다. 겨우 0.73%포인트 이긴 후보가 상대 후보를 법을 무기 삼아 핍박·제거하는 것은 전례도 없거니와 많은 학자들이 민주주의 퇴행의 유력 지표로 꼽는 나쁜 짓이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 대통령이 경쟁자였던 야당 대표와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내모는 우행이었다.

어쨌든 윤 대통령의 도발과 이재명 대표의 항전이 격돌한 이·윤 대전의 2라운드가 길게 이어졌다. 이 싸움의 분수령은 2024년 4월의 총선이었다. 여기서 이기는 쪽이 승기를 잡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어이없게도 윤 대통령은 스스로 무너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방편은 국정기조의 대변화였다. 개헌도 하나의 카드였다. 그럼에도 그는 계엄을 '최종적 해법'으로 선택했다. 그 치명적 오판 탓에 윤 대통령은 지금 영어의 몸으로 파면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권교체는 당연하고, 사리에도 부합해 보인다. 근래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정권교체론 강세와 후보 지지율 우위도 같은 맥락이다. 극심한 양극화, 이 대표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가 변수이긴 하나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더 심한 비호감 행태로 아직은 반전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재명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가 '큰 이재명'을 일궈내면 쉬운 싸움이고, '작은 이재명'에 안주하면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이번 대선은 이재명 대 이재명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얼마 전부터 흑묘백묘·실용론을 주창하고 있다. 흑묘백묘론은 중국 덩샤오핑의 담론이다. 중국 공산당이 마오쩌둥의 잘못에 대한 시시비비, 즉 책임을 덮고 그 당이 계속 주도하겠다는 논리다. 물론 이 대표의 포인트는 '쥐 잡는' 행위에 있다. 그럼에도 어떤 고양이든 따지지 말고 앞으로의 과제에만 집중하자는 건 계엄·내란의 책임을 묻고 있는 현 국면과 어긋나는 프레임 미스매치다.

더 큰 문제는 흑묘백묘론의 실용 프레임이 낳는 엉뚱한 효과다. '검든 희든 쥐 잡는 게 임자'라는 사고는 수단이 뭐든 좋은 결과만 내놓으면 된다는 내러티브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야당의 입법독재를 막기 위해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도 실용 프레임으로 강변될 수 있다. 목적이 옳다면 수단의 적절성 여부는 부차적이다! 요컨대, 이 대표의 실용 프레임이 윤 대통령과 탄핵세력에 대한 엄벌 분위기를 훼손하는 담론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용이 닻을 내리고 있는 분명한 원칙이나 준거를 제시해야 실용론의 참뜻이 온전히 전달될 것이다. 예컨대, 그가 표방하는 먹사니즘이나 잘사니즘도 헌법적 근거를 밝히면서 얘기하면 소구력이 배가되지 않았을까. 누구와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그 지향과 준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편의주의(timeserving)로 오해되기 쉽다. 잔소리로 듣겠지만, 주저하는 유권자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바라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한국일보

이철희 전 국회의원·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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