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연구팀, 국제학술지 발표
병원 싱크대 배수구서 샘플 채취… 녹농균 등 박테리아 67종 발견
항생제 내성 있는 병원균도 검출
국내 ‘병원 내 감염’ 연평균 264건… 팬데믹 이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
중소병원 등 감염관리 인력 부족… “환자보호 위해 정책지원 강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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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싱크대 배수구에는 ‘의료 관련 감염(HAI)’을 확산시킬 수 있는 병원균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HAI로 인한 질환은 폐렴, 요로 감염, 혈류 감염 등이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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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등 의료기관 내에서 일어나는 ‘의료 관련 감염(HAI)’으로 유럽에서만 연간 약 9만 명이 사망한다. 질병 치료를 위해 의료기관에 방문했다가 예기치 못한 감염으로 적잖은 인명이 희생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국립대병원 기준으로 연평균 264건의 HAI가 발생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오는 격인 HAI 확산의 주범이 병원 싱크대 배수구에 숨어 있는 병원균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HAI 관리에 미숙한 것으로 여겨지는 국내 중소 규모 요양병원의 HAI 관리를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실마리가 제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병원 싱크대 배수구는 병원균 저장소
마르가리타 고밀라 스페인 발레아레스제도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병원 싱크대 배수구에 감염을 확산시키는 병원균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14일 국제학술지 ‘미생물 프런티어’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에 있는 한 대학병원의 싱크대 배수구를 조사했다. 이 병원은 표백제를 이용해 싱크대와 배수구를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화학 물질과 가압 스팀 청소기를 이용해 2주마다 소독하고 있다. 배수관은 1년에 한 번씩 고농도 염소 처리도 한다.
연구팀은 2022년 2월에서 2023년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병동 5곳의 배수구에서 박테리아 샘플을 채취했다. 그다음 샘플을 배양한 뒤 종을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 ‘DNA 바코딩’과 질량 분석 기술을 이용해 1058개의 미생물 균주를 식별했다.
연구팀이 발견한 박테리아는 67종이었다. 가장 많이 발견된 병원균은 스테노트로포모나스와 녹농균이었다. 폐렴간균, 아시네토박터, 엔터로박터, 황색포도상구균 등도 발견됐다. 배수구에 정착한 이 병원균들은 외부로 퍼져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특히 발견된 병원균들이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이 있는지 테스트한 결과 발견된 녹농균의 21%가 최소 한 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이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치료할 때 쓰는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에 내성이 생기도록 만드는 유전자인 ‘blaVIM’을 가진 녹농균도 여러 병동에서 산발적으로 검출됐다.
연구팀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방문한 환자들이 오히려 새로운 감염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한다”며 “유해한 박테리아의 확산을 줄이는 방안을 찾고 박테리아의 출처와 전파 경로를 연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감염관리 취약한 중소병원 지원책 필요
병원은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이 모인 장소이기 때문에 감염병이 쉽게 확산한다. 항생제가 많이 사용돼 항생제 내성이 생긴 병원균도 생긴다. 생물체 간에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통해 한 병원균이 다양한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얻게 되면 어떠한 항생제도 통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되기도 한다. 슈퍼박테리아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전 세계 병원 예산의 약 6%는 HAI에 의해 소모되며 이를 비용으로 따지면 240억 유로(약 36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국내의 경우 국립대병원 본·분원 감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99건으로 줄었던 HAI는 2021년 253건, 2022년 294건, 2023년 303건으로 다시 늘어났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HAI로 인한 질환은 폐렴, 요로 감염, 혈류 감염이다.
정부는 의료법에 따라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은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2021년 시행한 의료기관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은 100%, 100병상 이상 병원은 64.9%가 1명 이상의 감염관리실 전담 인력을 두고 있었다.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2년 실태조사에서는 감염관리실에 전담 인력을 배치한 요양병원이 3.1%에 불과했다.
중소병원이 상대적으로 감염 관리에 소홀한 이유는 재원 및 인력 부족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의료계는 정부가 의무 지침만 마련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HAI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HAI 감시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충분한 수가를 책정하는 등의 정책적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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