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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수)

[지금, 여기]짠맛을 잃은 소금,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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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바깥에 버림을 받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짠맛을 잃은 공공기관이 많이 있었지만, 새로운 주인공이 전격 등장하고 있다. 바로 국가기록원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일부터 21일까지 국가기록원에 대한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행안부는 산하기관 대상 정기 감사로, 직원 복무 현황과 예산 집행 등 운영 사항을 점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가기록원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실제 엄청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해 기록물 파기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달 5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육군본부가 지난해 12월4일 0시58분 합참으로부터 팩스로 받은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오전 7시에 파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육군 지상작전사령부도 같은 날 0시11분 계엄사령부로부터 포고령을 팩스로 받았으나 오전 5시쯤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기록원은 지난해 12월12일부터 20일까지 육군본부 등 18개 기관을 대상으로 기록물 관리 실태를 점검했으나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추 의원의 주장과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 점검은 기관에서 제공한 기록물 생산 현황 목록과 실물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물 파기 여부를 밝히려면 직원 면접조사, 미등록된 기록을 중심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관련 기관이 제출하는 자료만으로 내밀한 실태 점검은 불가능하다. ‘주마간산’ 조사로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해 12월10일 국가기록원에 계엄 기록물 폐기 금지를 요청했지만, 국가기록원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36일이 지난 후 폐기 금지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가기록원장은 “정부 전자기록 생산 시스템에 등재된 것만 폐기 금지 조치 대상이므로, 계엄 선포 관련 기록물들은 조치 대상이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짠맛을 잃은 소금 같은 국가기록원의 모습이다. 이런 태도에 격분한 기록 전문가들이 국가기록원 마당에 40여개의 근조화환을 보냈다. 화환에는 ‘방조도 범죄다’ ‘창피해서 사망한 기록인’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분노가 날 선 칼처럼 느껴진다.

국가기록원이 내란 사태 기록 관리를 모른 척하면서 관련자들의 증언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은 “B1 벙커는 구금 시설이 아니며, 체포 지시는 없었다”고 뻔뻔하게 증언하고 있다. 반대로 노영훈 방첩사 수사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지시로 B1 벙커를 가봤더니 구금 시설로 적당하지 않아, 대신할 시설을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 측은 기록과 증거가 부실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진술을 교묘히 바꾸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의 복지부동은 큰 사건만 터지면 반복되는 행태이다. 행안부 소속 기관으로 독립적인 위상을 갖지 못하면서 권력기관의 눈치도 많이 본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국가기록원에는 영구기록물 보존 기능만 남겨두고,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 실태를 조사 및 관리할 새로운 기구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고위 공무원들이 대형 참사 및 권력형 비리가 발생하면 기록물을 은폐, 위조, 무단 폐기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조직과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궤변과 거짓말로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공공기록물법 제5조는 “공공기관 및 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기록물의 생산부터 활용까지의 모든 과정에 걸쳐 진본성, 무결성, 신뢰성 및 이용 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리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법조항이지만 기록이 왜곡되는 시대에 곱씹어볼 만한 문장이다.

경향신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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