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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기고]공화정, 대통령, 헌법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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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헌법제정회의 마지막 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중요한 질문을 받는다. “박사님, 우리가 가지게 될 정부는 무엇인가요. 공화정인가요 아니면 왕정인가요?” 이에 대한 프랭클린의 답변은 이렇다. “공화정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18세기 말 미국은 독립전쟁과 연방헌법 제정을 통해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한 대통령제 연방정부를 세계 최초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인들은, 대통령직을 신설하고 독립전쟁의 영웅인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음에도 공화정과 대통령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래서 워싱턴을 ‘선출된 전하’(His Elective Majesty)라고 칭하고 국왕처럼 예우하려 했다.

그러나 신생 공화정이 왕정으로 해체될 것을 우려한 워싱턴은 자신을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부르도록 명하였다. 또한 당시 연방헌법에는 연임금지 규정이 없었음에도 자신의 3연임이 대통령은 종신제라는 인식을 남길 것을 우려한 워싱턴은 1회 중임 후 차기 대선에 불출마함으로써 ‘1차 중임제’라는 중요한 헌법관습을 미국 헌정사에 남겼다.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2번째 임기 말이던 1796년, 일간지를 통해 고별사를 미국인들에게 발표했다. 고별사에서 워싱턴은 세 번째 임기를 추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비록 영국·프랑스의 전쟁으로 미국이 위기에 처했지만 새로운 대통령의 손으로 공화정은 안정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나아가 지역주의·당파성·외국개입을 연방헌법 파괴의 위험으로 지목하면서 연방정부와 헌법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두 번째 위험과 관련해 워싱턴은 당파성이 미국 정당으로 하여금 공익을 위해 통치하지 않고 권력 획득과 유지에만 몰두하는 ‘복수 정신’(spirit of revenge)으로 이어질 것을 경고했다. 230년 전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왜일까?

20세기 초 독일 헌법학계에서는 ‘누가 헌법의 수호자인가’를 두고 카를 슈미트와 한스 켈젠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단주의자인 슈미트는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헌법수호자라고 평가했고, 법실증주의자인 켈젠은 제도로서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헌법수호자라고 평가했다.

21세기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가장 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며 국가긴급권을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서 헌법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 역시 법률의 위헌 여부, 고위 공무원의 탄핵 여부, 위헌정당의 해산 여부 등에 관한 헌법해석권을 담당함으로써 최종적인 헌법수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헌법이 설정한 권력분립의 구조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를 사후적으로 돌아보고 그것이 목적상, 발동요건상, 사후통제상 한계를 일탈하였는지 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주권자이자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이 미리 예정한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부디 헌법재판소가 당파성을 초월해 12·3 비상계엄 관련 행위의 위헌·위법성과 중대성 여부를 엄중히 판단함으로써 국민이 부여한 최종적인 헌법수호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만약 우리가 지킬 수 있다면.

경향신문

승이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승이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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