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에 트럼프 대통령 의지 전달해 경고
일대일로 협정 조기 종료 등 양보 받아내
비야디 포함 중국 EV 판매량 4배 급증
화웨이, 칠레·페루에 데이터센터 설립 등
中기업 인프라 구축·남미 장악력 확대
중남미 33개국 대중무역액 700조 육박
한자릿수 점유율, 16%까지 끌어올린 中
美는 52%→39%로 떨어져 영향력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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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파나마·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과테말라·도미니카 등 중남미 5개국을 찾았다.
첫 방문지 파나마에서는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2일(현지시간) 중국의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정을 조기 종료하고, 협정 갱신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한 중국 영향력을 줄이는 실질 '변화'를 요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전달된 뒤 나온 조처였다.
루비오 장관은 3일 파나마를 떠나며 소셜미디어 엑스에 "파나마가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참여를 종료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과 파나마 관계 및 '자유로운 파나마 운하'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고 환영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결정에 만족감을 표시한 셈이다.
■루비오, 첫 순방지 중남미… 파나마 양보 받아
파나마는 운하 통제권 환수를 위해 군사력까지 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트럼프의 격앙된 대중 견제 입장 속에서 미국에 호응하며 협력 의사를 밝혔다. 미 국무부는 지난 1월 31일 루비오 장관의 방문과 관련, 중국에 대한 대응 등 지역적 협력이 주요 의제임을 강조했다. 중미 전략경쟁 속에서 앞마당격인 중남미 지역에 대한 지배력의 고삐를 다시 쥐며 채비하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여타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남미에서 커지고 있는 중국 영향력 차단이 트럼프 의도대로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수년간 미국 영향력은 약화되고, 기존 판도가 뒤집어 지고 있는 여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2000년 이후 중국이 구축해 놓은 중남미와의 단단한 경협 관계는 이미 되돌리기 어렵다. 중국은 항만·통신 등 사회간접시설 투자협력사업을 통해 영향력과 존재감을 키워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남미 12개국의 대중 무역액은 지난 2000년에 비해 40배 증가한 3229억달러(466조1707억원)였다.
2015년부터 남미 12개국의 대중 무역액은 미국을 추월하면서 그 차이도 1.5배 이상 벌어졌다. 멕시코와 중미 지역이 미국의 앞마당이라면 남미는 뒷마당 격인데 남미 12개국 가운데 절반인 6개국에서 대중 교역액이 미국을 앞질렀다. 2000년 파라과이 한 나라만 대중 무역액이 미국보다 많았었다.
중미를 포함한 중남미 33개국 전체 대중 무역액은 2000년 125억달러에서 2022년 4830억달러(697조3071억원)로 늘면서 점유율도 2%에서 16%까지 높아졌다. 반면, 미국 점유율은 52%에서 39%로 떨어졌다.
중국은 전기제품이나 의류, 자동차 등을 남미에 수출하고 콩과 밀, 설탕 같은 식량과 전기자동차(EV)와 스마트폰 등 첨단전자제품에 필수적인 광물자원을 남미에서 수입하고 있다. 대중 무역으로 연 500억달러 가까운 이익을 얻는 브라질 등 남미 각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 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中기업, 중남미 인프라 구축
핸드폰과 통신설비를 공급하는 화웨이는 칠레나 페루 브라질 등에서 데이터 센터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남미를 인공지능(AI) 기술의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차들이 질주하던 중남미 거리에는 비야디(BYD) 등 중국 EV들이 빠르게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비야디는 2024년 브라질 판매량이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늘었다. 비야디는 브라질 바히아주 카마카리의 옛 포드사 공장을 인수해 남미 생산 거점으로 구축했다. 올해부터 돌핀 해치백, 송 플러스 SUV, 위안 플러스 크로스오버 등의 모델을 연간 15만 대 이상 생산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들은 유통판매망 장악을 위해 인프라 구축이 공을 들이고 있다. 통신 기술, EV 등의 보급 확대로 중국 기술표준을 중남미 표준으로 확립하려는 의도가 짙다.
중국과 중남미 관계는 인프라 투자 및 상품 교역을 넘어서 위안화를 매개로 한 단계 격상되고 있다. 2023년부터 브라질은 농작물 거래 등 무역 등에서 위안화로 무역을 진행했다. 2023년 말 브라질의 외환보유액은 3550억달러, 위안화가 4.8%로 통화별 점유율 80%인 달러보다 현저히 낮지만 꾸준한 증가세다. 위안화가 2019년 1.1%에서 4.8%로 상승했고 달러화는 86.8%에서 떨어졌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도 위안화 결제가 가능하게 됐다. 인프라와 상품 유통 확대 속에 각국의 위안화 결제 등 금융 협력가 속도를 내고 있다.
■브라질, 美 제치고 中이 최대 무역국
중국의 남미 협력에서 두드러진 약진 중 하나는 브라질과의 협력 확대다. 브라질의 대중 무역액은 2000년 대비 68배가 늘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을 제치고, 2009년 이후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2억1000만명 인구의 남미 최대 경제규모의 브라질과는 단순 경협을 넘어 전략적 협력으로 심화되고 있다.
20년 전 브라질 전체 수출량의 6%에 그쳤던 대중 무역액은 대두, 철광석, 석유, 쇠고기 등의 수출 확대 속에 2023년 30%를 넘었다.
중국은 식량 안전 보장 차원에서 브라질과의 농업 협력을 강화해 왔다. 2017년 이후 브라질은 중국의 최대 식량 공급국이 됐고, 브라질 대두 수출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고 있다.
지난 2024년 11월 시진핑 주석의 브라질 국빈 방문 결과는 더 밀착된 두 대국의 모습을 보여줬다. 양국은 인프라나 에너지 전환, AI 분야 협력을 포함한 항공우주 등 첨단과학기술, 농업 등 40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했다.
그 가운데 중국 위성기업 스페이스세일(SpaceSail)의 브라질 위성 인터넷 서비스 참여는 상징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중남미에서 미국 지배력이 줄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확실하게 입지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이로써 브라질에서 미국의 '스타링크'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는 브라질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지만, '중국판 스타링크'인 스페이스세일의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스페이스세일은 브라질 통신기업 텔레브라스(Telebras) 등과 협약을 맺고 향후 수 년동안 최소 10억 달러 투자를 통해 2026년 브라질에서 위성 인터넷 서비스 상용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中, 남미 영향력 더 커질 것
중국은 브라질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도록 세게 끌어 당기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입장과 중립외교를 지향하는 브라질 당국은 가입을 미루며 신중하다. 다만 브라질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과 지난 2024년 11월 20일 브라질리아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룰라 대통령은 일대일로와 브라질의 개발을 연동시키는데 합의했다. 여지를 두고 경제 협력 촉진에 활용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중남미 33개국 가운데 22개국이 일대일로에 참가하고 있다.
마이클 시프터 조지타운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항해 내세운 '경제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은 겉보기에 번지르르할 뿐, 실질적 투자와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다"고 실질적인 협력에서 뒤처지는 미국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평가하면서, 중국의 존재감은 더 커졌고, 중심에 서게 된데 비해, 존재감이 약해진 미국은 밖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더 강해지면서, 경협 확대를 내세운 중국의 입지는 더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FT 등도 미국 일방주의가 강해지면서 중남미에서 중국의 입지는 더 강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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