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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5년 전만 해도 중국이 경제력과 패권 경쟁에서 미국을 따라잡는 데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2~3년 사이 그런 전망이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고, 선진국들이 저가와 저품질이라고 무시해 왔던 휴대전화나 전기차, 조선은 이제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선진국 제품을 따라잡고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효율성 측면에서 '딥시크'가 '챗GPT'를 위협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난 4~5년 사이 중국의 산업기술 발전이 가속화된 데는 8년 전 도널드 트럼프 1기 이후 미국이 주도권을 뻬앗기지 않기 위해 무역장벽 등으로 중국을 압박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5년 전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반도체 소재 수출을 금지하자,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품목에서 기술 자립을 이뤄냈지 않았던가.
아널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서진론을 주장했다. 인류 사회 최초로 발현된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3000년간 지속된 데 이어, 인문학과 과학적 기초를 발전시킨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1000년간 지속됐다. 이후 기독교 원리주의로 인해 창조론에 역행하는 인문학과 과학 발전을 막은 유럽의 중세 암흑기로 말미암아 신문명의 주도권이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로 잠시 동진했으나, 십자군 전쟁과 그랜드 투어, 고전 재번역 등으로 촉발된 르네상스로 인해 주도권이 다시 유럽으로 넘어왔다. 이후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뤄낸 영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이 주도권을 넘겨받은 상황을 살펴보며, 토인비가 인류 문명의 주도권이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간다는 '문명의 서진론'을 설파한 것이다. 앞으로 인류 문명의 주도권은 어디로 갈까.
따지고 보면 '문명'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생산 도구와 기술에 기반한 사회상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문화'라는 단어와는 다르고, 그 중심에는 도구와 기술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류 사회는 신석기 혁명을 필두로 청동기, 철기, 증기, 전기, 인터넷 혁명에 이어 AI 시대로 발전해 왔고, 이들 각 시대 간 발전에 소요된 기간은 절반으로 줄어왔으며, 시대 변화의 중심에는 생산 수단과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돌과 청동, 철이라는 물질 도구에서, 증기와 전기라는 에너지 도구로, 다시 연산과 추론이라는 논리 도구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동인은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정치와 경제 영역의 패권으로 나타났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패권을 잡은 나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득권에 안주해 노쇠화되고, 압제 상태에 있던 나라 중 생산 기반을 이어받은 나라에서 또 다른 도구와 기술 혁신이 나타나 주도권을 빼앗기는 역사를 반복해 왔다. 이제 인류 문명의 큰 흐름은 미국에서 아시아 6룡과 중국을 거쳐 인도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이고, 이것을 막아 보겠다고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미국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트럼프가 치고 있는 강력한 무역장벽은 그 속도만 높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피즘은 잠시 미국의 체면을 유지시켜 주겠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패권 상실을 최소한 5~10년은 앞당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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